너랑 꼭 영국에 가고 싶어

신혼여행은 맨체스터 어때?

by 이마치


K는 영국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건 내게 꽤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춘기 시절부터 나는 늘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K에게는 그 대단한 일이 일상이었으니까. K는 늘 맨체스터를 그리워했다. 축구 얘기가 거진 절반이었고, 그 외에는 맨체스터의 특이한 억양, 날씨,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와 만날 때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개봉했는데, 그 영화의 실제 모델인 앨런 튜닝이 K의 대학 출신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대학로 할리스커피에 앉아 학교에서 보았던 앨런 튜닝의 기념물들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나는 그가 부럽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딴 세상 사람 같았다.


그와 만났던 시간들은 늘 온갖 감정의 혼탕이었다.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 질투, 열등감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가 좋으면서도 미웠다. 나는 K가 영국 얘기를 할 때 가장 사랑스러웠고, 또 가장 힘들었다. 영국 배우들이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마다,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다 모르는 외국인들과 깔깔대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기시감에 시달렸다. 그런 나를 K는 아마 알았을까. K는 종종 내게 꼭 나랑 영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K에게 들었던 모든 달콤한 말들 중 최고였다. 너랑 꼭 영국에 가고 싶어. 런던 말고, 맨체스터에. 거긴 산도 바다도 없는 황량한 도시지만, 너에게 내 젊은 날을 보여주고 싶어. 대학교를, 내가 하숙하던 집을, 아침마다 뛰던 길, 늦은 밤까지 맥주 마시던 펍, 그리고 열광하던 맨시티의 축구경기장을.


돌아보면 K의 그런 말들은 질투심을 견딜 수 없어하는 어린 연인에 대한 배려였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의 젊은 날들에 내가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그처럼 쉬이 한국을 떠나 꿈꾸던 세상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와 연애하던 20대 초반의 1년은 가장 글로벌한 시간들이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그와 함께 했고, 주말에 데이트를 할 때면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그 옆에 앉아 가장 많은 영어공부를 했다. 영국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기도 했고, 어쩌면 영국에서 보낼 그와의 미래를 꿈꿨다. 어제 오랜만에 K의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스마트하게, 열심히 잘 지내고 있다고. 요즘의 무기력한 나는 또 그에게 지고 있는 것만 같아 오랜만에 영어책을 집어 들었다. 나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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