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함께 Happy New Year

한 해의 시작을 함께 한다는 황홀함

by 이마치


내 첫 해외여행지는 홍콩이었다. K와 함께였다. 입국신고서를 쓰는데 뭐가 뭔지 몰라 허둥댔었다. 그런 스스로가 조금 창피했다. K는 빠르게 작성한 신고서를 무심하게 건네줬다. 그걸 보고 똑같이 적으면서 나는 속으로 그가 상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호텔 체크인을 했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왕가위 감독을 대단히 좋아했고, K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 없었다. 홍콩으로 떠나기 전 나는 그가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같은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다. 그래도 우리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각자의 무드에 취해 행복해했다. 나는 중경삼림의 장면들을 떠올렸고, K는 소호 거리가 주는 영국 느낌에 푹 빠졌다.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며 케밥을 먹었다. 유학 시절에 돈이 없어서 맨날 케밥을 먹었다고 했다. 터키인지 어디인지 모를 외국인이 만들어준 케밥을 먹으며 우리는 한낱 맥주 한 병에 취해 몇 시간이고 킬킬댔다.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흐린 날의 야경을 봤던 것, 침사추이 역의 끝이 안 보이는 무빙워크 위에서 마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인 것처럼 수십 장이고 사진을 찍어주던 것. 그 모든 게 꿈같은 기억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90년대 홍콩영화 안에 나와 그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새해를 맞던 밤, TV를 트니 BBC 방송이 나왔다. 우리가 묵던 호텔이 있는 침사추이 거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길로 뛰어나가 모르는 사람들과 미친사람처럼 웃어대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초침이 12로 딸각 움직이자마자 나는 K를 꼭 안았다. 그 날에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스물셋에서 스물넷이 되던 그 여러 날들에 K와 함께여서 참 좋았다. K의 웃음소리와 숨소리가 느껴졌다. 세상의 시간이 1월 1일 0시에 멈춘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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