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못날 때 가장 사랑받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연애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좀 막막해진다. 할 얘기가 많지만 어디까지 말하는 게 옳은지를 모르겠다. 나중에 상대가 이 모든 걸, 내가 쓴 모든 것들을 알게 되면 뭔가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부끄러워서. 내 밑바닥을 네가, 내가, 모두가 알게 되는 게 간혹 비참해서.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내 속을 내보일 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내가 울 때, 몇몇의 사람들이 그들의 얘기인 양 공감한다는 것을. 보잘것없는 나의 글도 그러한데, 작가들은 얼마나 더 그러한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본다. 어느 편에서, 대화 주제가 허수경 시인이었던 적이 있었다.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피부가 아주 얇은 사람의 글을 읽는 것 같다고. 조금만 추워도 살이 에일듯한 고통을 느끼는 시인이라고. 허수경 시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섬세함에 울곤 했다.
이 세계에 있는 어떤 식사가 그렇지 않을까요
풀을 불러놓고 풀을 먹고
추억을 불러놓고 추억을 같이 먹고
미움을 불러놓고 미움을 같이 먹었더랬지요
우리는 언제나 그랬지요
이 세계에 있는 공허한 모든 식사가 그랬지요
우리들의 저녁식사,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 창작과 비평사(2001)
부끄럽고 솔직한 글이 주는 힘을 안다. 속살 같은 글을 많이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