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_ 근대를 수놓은 그림전
민트색 빛이 도는 하얀 꽃잎과 붉은 벽지.
정해진 정물화의 색을 벗어나려는 듯한 컬러.
꿈틀거리는 느낌이 전해지는 붓질.
1930년대의 다른 정물화와는 뭔가 달랐다.
작가 이름을 확인하니 역시 그였다.
한국 최초의 야수파 화가, 구본웅.
시인 이상의 얼굴을 어둡고 강렬한 컬러와
힘 있고 날카로운 느낌으로 그려낸 그 작가.
'정물화에서조차
자신만의 반항스러움이 묻어나다니 대단할 걸!'
(아쉽게도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드러나지 않았다.)
돌아와서도 그의 그림이 불쑥 불쑥 떠올랐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료를 살펴보다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2살 무렵 척추 장애로 그는 평생 단신으로 살았다.
"구본웅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지원한다.
그러나 신체적 결함 때문에 입학을 거부당하고 경신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
처음엔 조각에 재능을 보여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얼굴 습작>을 출품하여 특선을 한다.
그러나 체력이 따르지 못해 조각을 포기하고 서양화로 바꾼다."
_황정수 님의 "한국 예술사에서 박제가 된 두 천재, 구본웅과 이상" 글 중에서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던
분노가 묻어나는 뜨거움과
무언가로 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반항스러움이 태생적으로 가지게 된 한계로 인해서였을까?
날마다 눈으로 보고 견뎌야 했던 몸의 한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화가라는 상황의 한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실들을 어깨에 메고 살아야 했던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그림에는
낙심과 슬픔만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몸과 시대의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생의 열정을 붓에 담은 한 예술가가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소장품전_근대를수놓은그림
*키가 크고 잘 생겼다고 알려진 시인 이상,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작은 키의 추남으로 알려진 구본웅.
어릴적부터 한 동네에 살며 시인 이상의 죽음 전까지
함께 하며 했던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는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