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미학

퍼팩트 패밀리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1.

by 이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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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다.

미술관에 붙어있는 수많은 텍스트와 숫자와 도표, 그래프.


"요즘 관객들은 어려운 주제나 텍스트가 많은 걸 싫어하잖아요."

박혜수 작가의 우려와는 달리

많은 관람객들이 그녀의 작품 앞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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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1. 박혜수

_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당신은 누구인가


박혜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숫자와 텍스트로는 느껴지지 않았던 현실을

이미지로 선명하게. 가상인 것처럼 넌지시.

'우리'라는 관계가 왜곡되고 깨어진 후에 만나게 된

현실의 모습을.


느낌으로,

마음 가는 대로,

작가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미술관에서 이런 느낌을 뿜어내는 작품을 접했던

관객에게 그녀의 작품은 다른 모습,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다.


/ 작가는 실질적인 작업에 앞서 '우리'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과

작가적 해석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어 냈다. /

_ 작품 설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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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장의 설문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미술관 한가운데 벽을 만들며

설치 작품처럼 놓여있었다.

하얀 미술관 벽에 걸린 액자에 담겨있던 것은

그림이 아니었다.

도식화된 표 안에 적혀있던 연필로

적어 내려 간 작은 글씨였다.




우리 친밀도란 이름의 도표가 걸려있었다.

가로축에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가족,

우리 회사/학교가, 세로축에는

친밀도를 보여주는 숫자 0~5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여러 색깔의 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휴먼 렌털 주식회사인

<퍼펙트 패밀리>라는 회사가

한창 홍보 중이다.

회사 홍보 팸플릿이 미술관 한쪽에 놓여있고,

터치 스크린으로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홍보 영상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족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모습으로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마음이 이어지는 가장 가족 같은 가족으로 당신을 이해하겠습니다./

_ 퍼펙트 패밀리 홍보 문구





가상으로 만들어진 '퍼펙트 패밀리'란 회사는 그럴 듯 했다.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를 모텔링 해서 만들었다는

작품 설명을 읽고나니 작가가 보여준 풍자는

슬픈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

다른 한켠에서 상영되던 고독사에 대한 영상.

심하게 훼손될 정도로 부패한 고독사 한 시신에 대한 인터뷰를

듣다보면 '퍼팩트 패밀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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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작업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관객이 작업을 보고

집에 돌아간 그 순간이에요.

제 작업을 보고 거기에서 서로 교감한 그 때가 아니라

과연 관객이 무슨 생각을 갖고 돌아갈까.

하나라도 자기 질문을 하나쯤 갖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제 작업은 그 질문을 깨우기 위한 티핑 포인트인 셈이에요. /

_ 박혜수 작가 인터뷰


인터뷰의 내용처럼 그녀의 작품은

사회학처럼 통계와 수치, 분석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사회학적인 자료와 통계와 텍스트는

설치 미술이란 옷을 입고 미술관에 들어왔다.


/ (세상을) 가장 평화롭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심리적인 것 같아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생각, 가치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보였다가 안 보일 수도있고,

앞만 보다가 뒤만 보일 수도 있고

그렇게 되었을때 세상이 달라보이잖아요. /

_ 박혜수 작가 인터뷰


그녀의 인터뷰를 듣고보니

무심한 듯,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주듯한 작품 안에서

언뜻 혁명가의 눈빛이 비친다.

그녀의 혁명은,

"촘촘한 조사와 채집을 통한 자료 수집"을 도구삼아

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고, 되는대로 흘러가게 되는 세상에서

그녀는 '위험한' 질문을 던지며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 한다.


미술관에서 기대되는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무장해제된 채

유유자적 걷던 관객들은 뜻밖의 질문을 만났다.

그녀가 던진 주제와 질문에

잠시 고민하거나 혹은 무심히 지나칠지 모른다.





"예술이 사회와 관계맺는 법"

그녀가 받았던 인터뷰 질문처럼,

예술이 사회와 관계를 꼭 맺어야 할까?

그렇지 않은 예술 또한 아름답다.

그러나 예술은 늘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작가마다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박혜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은 이런 것도 보여줄 수 있다."

좀 더 넓은 예술의 범위를 본 듯 하다.


현대 예술 안에서는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다룰 법한 주제를

숫자와 텍스트, 도표와 그래프로도

보여줄 수 있었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2020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우주에 온 듯한 체험을 선사하며 난민문제를 다룬 김아영 작가를 비롯해 '올해의 작가들'의

볼만한 전시들이 준비되어 있다.

한 작가에게 제공된 전시장의 규모가 크다 보니 단편소설이아닌 장편소설을 읽은 듯,

재미와 깊이를 둘 다 충족시켜주었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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