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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는 천사가 아닌 창녀의 그림을 그렸을까?
조르주 루오
by
이음음
Sep 1. 2020
<밤의 풍경, 작업장에서의 난투극>. 조르주 루오
그가 살던 시대의 모습이
어쩌면 지금과 이렇게 같은 느낌일까
요
?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부르짖는 이들이 가득한 시대.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뒤엉킨
혼란 가운데 조르주 루오는 서있었습니다.
인상주의 화풍이 화가들의 붓끝에서 넘실거렸고,
거리의 여인들은, 돈 몇 푼에
벗은 몸으로 이들의 모델이 되
었습니다.
몸을 내어주어야 살 수 있었던
이들의 슬픈 몸은 로맨틱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로
덧칠해진 그림이 되
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조르주 루오
는 그럴 수 없었지요
.
그가 본 거리의 여인들은 삶의 고통을
짊어진 한 인간이었습니다.
환상을 품고 붓을 든 남성의 시선이나
그저 대상을 바라보는
차가운 타자의 시선이 아니었습니
다.
그녀들이 견뎌야 할 잔혹한 삶은,
그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기도 했습니다.
낭만적이거나 로맨틱하지 않은 벗겨지고,
찢긴 인간의 고단한 삶과 같은 모습.
<거울 앞의 창녀>, 1906년, 종이에 수채
조르주 루오가 처음부터 거리의 여인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배당에 어울
릴법한
"율법학자들과 열두 살 예수"와 같은
성경의 한 부분을 그리던 종교화가였
습니다.
신을 믿는 자의 눈에 비친 거리의 여인들은
살기 위해 밤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과도 같았
습니
다.
그것이 그가 직면한 시대의 현실이었
고,
그
러한 현실은 천사의 날개 안에 담겨질 수 없었습니다.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종교화의 전통과 대중이 선호하던
거룩함과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포기합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마티스와 피카소의 혁명적인 미는 받아들여졌지만,
조르주 루오의 혁명적인 표현은 오랜 시간
관심 밖에 놓여있었습니다.
홀로 그림만 그리던 그 자신도,
그림도 오랜 시간 이해받지 못했
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같은 열정을 가진 신앙의 친구도
그의 그림과 믿음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비난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계속 전진합니다.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담은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어떻게 했기에
너의 이웃이 이렇게 되었느냐?
더 나아가
지치고 벌거벗겨진 거리 여자의
모습에서
하나님 앞에 선 알몸처럼 비루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담으려 했습니다.
<미제레레>,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1948년, 석판화
40대에 1차 세계대전을,
60대에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조르주 루오
.
그
가 바라본, 세상은
소리 없는 절규로 가득한 곳이었
습니
다.
그러나, 그는 단지 절망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미제레레(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판화집을 통해 이 땅의 어둠만이 아닌
빛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왜 조르주 루오는 천사가 아닌,
창녀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그림에 담긴 이 질문은 우리에게
무엇이 세속적이고
무엇이 거룩한 것일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조르주 루오는 세속적이어 보이는
창녀와 광대의 그림 속에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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