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던 딸이 나쁜 딸이 되었다가
일을 마치고, 가정이란 일터로
다시 들어가기 싫어지면,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
"얘들아, 나와. 자장면 먹으러 가자."
아이들에게 자장면은 언제나 정답.
배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탱글탱글한 면의
자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셀프 단무지를
예쁘게 세팅해 놓고 두리번. 두리번.
동네 중국집을 가면,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장면 먹방을 보고는 한다.
남녀노소, 입맛 없을 땐
역시 자장면.
그날도, 할머니와 그 할머니보다
더 할머니인 두 분이
자장면을 맛있게 드셨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의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은 계속 흔들리니
마스크 끈을 귀에 거는 일이
바늘에 실을 꿰는 일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검은 머리가 조금 더 많던
다른 할머니가 자상함이 묻어나는 손길로,
마스크를 귀에 걸어주었다.
자세히 보니, 두 할머니의 얼굴이 닮아있었다.
할머니가 된 엄마.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젊은 할머니가 된 딸.
자장면 외식을 마치고 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언뜻
나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22살에 나를 낳은 엄마.
밥만 많이 먹이면 아이들은
잘 큰다고 믿었던, 어린 엄마.
무일푼으로 나를 업고, 오방떡 장사를 해서
집안 살림을 다시 일으켰던, 무서울 것 없었던
우리 엄마가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를 찾겠다며, 할 말은 하고 살겠다고
매서운 눈으로 바뀐 딸의 눈치를.
원했던 바였지만, 엄마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픈,
할머니가 되어버린 건, 원했던 바가 아니었다.
그런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가 내 눈치를 보는 건,
뒤돌아서서 아린 마음을 쓸어내리게 한다.
오랜 시간, 엄마와 나의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생각했다.
늘 힘든 사건 사고가 많은 엄마 곁에서
엄마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랬던 딸은,
힘겹게 그 한쪽을 버티고 서 있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어느 부분은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22살 어린 엄마가 한껏 기울어진 집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노력했던 시간 덕분이었던 것을..
잊고 살았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들었다는 말을 하느라,
아픈 기억만을 붙들고 살았다.
중국집을 나서는
할머니가 된 엄마와,
아직은 젊은 할머니가 된 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갑자기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엄마, 내일 뭐해? 내일 얘들 데리고 갈게."
아팠던 시간을 붙잡고 있느라,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다.
무엇을 되찾아야 할지,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