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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바람이 부는 시간
숟가락은 아니지만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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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음
Aug 3. 2020
네팔에서 맨발로 가족의 신발을 닦고 있던 꼬마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Leeeum
숟가락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용해 그릇에서 밥을 퍼서 먹는데
사용한 후에야,
자신의 용도가 무엇이지 알게 된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숟가락으로 부를 때
자신이 숟가락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숟가락과 같은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숟가락처럼 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회사 혹은 공동체에서 일을 하며
어떤 일을 해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그것으로 타인의 인정을 받고
자신이 어떤 존재임이 불려진다.
직업으로, 직함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숟가락처럼 사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해야만 한다.
인간은 ~ 이런 존재다"라고 인간을 규정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신조차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것.
자유라 불리는 그것을 가졌다고 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그가 말한 자유는, 자본과 능력 만능주의의 손을 잡고
더 큰 족쇄를 만들어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에게는 기회가 많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야."
끊임없이 선택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며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숟가락과 같은 물건이 된 듯,
일터에서, SNS에서, 관계에서
매 순간 자신을 상품화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그렇게 해야 증명되는 존재...
이런 의미에서 무능력함은,
현대사회에서 사형선고와 같다.
자신을 증명해 낼 수 없는 능력이 없기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게 한다.
안타깝게도, 한 손은 창조주의 손을 잡았지만,
다른 한 손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삶이 있다.
마음의 반만을 신앙에 담근 이들의 삶은
그 누구보다 바쁘고 지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두 손으로 세상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겠지만
한 손으로 신을 붙잡는 이들은,
다른 한 손으로 세상에서 싸워나가야 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손으로
언제까지 치열하게 세상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가.
그러다 결국, 신의 손을 놓아버리거나,
다른 한 손으로 잡고 있는 신을 원망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라면,
왜 이렇게 해주지 않냐고, 왜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냐고.
신은, 단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되고야 만다.
숟가락에는 생명이 없다.
숟가락은 웃고, 울고, 아프고, 고통스러워 할 수 없다.
그저, 무엇인가를 담아 옮기는 능력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능력이 다하면 버려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다.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능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전부가 아
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살아있음이다.
웃고,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다 고통스러워하고, 후회하며 반성하는
바로 그런 살아있음이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자신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아
자해를 한 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아픔을 느껴서라도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그런 이에게 "당신은 살아있다고.
당신은, 내 앞에 살아있는 존재"라고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살아있어도, 죽은 자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죽었다고, 소망이 없다고 했던 마른 뼈와 같은 이들에게서
생기가 돌고, 생명이 일어난 기적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이
존재하는 것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마음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능력으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살아있음으로 이미 증명된
귀한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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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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