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발견한 위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람을 돌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어려움처럼
무거운 짐이 또 있을까요.
먼길을 달려가
눈물을 참고 있는
두 사람의 눈을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왔더라면
내가 위로를 받았을까요?
그들이 위로를 받았을까요?
아파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아픔이 뱉어내는 쓰디쓴 말과 행동을 받아내고,
수고하고 버틸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필요한데
마음은 그렇게 늘 씩씩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상황도 오랜 시간
변하지 않으면 소망도, 말씀도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오랜 기도는 어디에 쌓여있는 걸까요?
말씀은, 무엇을 바꾸고 있는 걸까요?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탄식하며
현실과 말씀이 분리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뜻밖의 위로를 발견했습니다.
"혹시 저 무수하게 많은 굉장한 말씀들이
젊은이의 현실에 아무 작용도 하지 않아서
마음 상해 있다면, 주제넘다 말고 내 말을 들어봐요....
세상은 크고 무섭고 힘이세요.
그에 비하면 말씀은 무력하기 짝이 없어요.
그건 말씀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가진 힘이 다른 힘이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은 세상에게 능욕당하고 옷 벗기고 채찍질당하고
창에 찔리고 못이 박히고 죽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힘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찮은 것이 자주 위대한 것을 이겨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생각해 봐요."
_이승우의 소설 <지상의 노래> 중에서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다릅니다.
이 말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너무나 다른 두 존재의 만남에서는,
오해와 불신이 쉽게 생겨나고는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어 무너졌던 이들과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줍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얘기해주었던
"말씀이 가진 다른 힘"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내가 하찮게 여겼던, 그러나 위대한 것을
이기고는 했던, 그것이 내 삶에
무엇이었는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좀 더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죄에 묶여 어찌할 수 없는 존재에서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녀로
옮겨진 기적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