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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Jul 23. 2021

화가의 진실, 당신의 진실

카라바조두번째이야기

그곳에 어둠이 없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Leeeum



화가이자, 범죄자.

시대와 어울리지 못했던 사람.


타인의 이해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더 중요했던 사람.


그래서 기꺼이 

빛과 어둠의 경계까지 

탐험했던 카라바조.


그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 "그녀는 누구인가?"로 끝났던 

첫 번째 이야기는 이곳에

 https://brunch.co.kr/@leeeum/362 )


1593년, 카라바조는

처음으로 여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카라바조는

이 여인을 그리며 

사람들의 비난과 의심에 휩싸였지요.

그림의 모델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사람들의 불순한 상상과는 달리

완성된 그림 속 여인은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조금은 지친 듯,

한쪽으로 기울어진 얼굴을

주목하게 된다면 알게 됩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왜 울고 있는 걸까요?


그녀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질문은 자연스레 답으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당시에는 이런 인식이 있었습니다.


"창녀라는 죄에 빠졌으나

그리스도를 만나 거룩한 성인이 되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지나가면서,

대중이 품었던 두  마음이 

그림에도 차츰 드러났습니다.

성스러움과 욕망.



티치아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533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거룩한 작품명과는 달리, 유명 화가들은

반누드의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금발의 벗은 비너스를 대신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하나의 유행이었지요.


그러나, 당시 문제아로 취급받던 카라바조는

막달라 마리아를 전혀 다르게 그렸습니다.


누군가의 바람대로 옷을 벗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속 막달라 마리아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듯 보입니다.

마치 카라바조가 그랬듯이.



화폭 밖의 삶도, 

화폭 안의 그림도

극적이었던 카라바조.

그는 변화를 갈망했습니다.


가난한 무명 화가에서

인기 많은 유명 화가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부딪히는 인생이었지요.


세상도, 그 자신도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두 번이나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고야말았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런 자신을 그림 속에서

처형시켰습니다.

다윗의 손에 들려있던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한

갈망을 그림에 담은 건 아닌지.


이렇듯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극적인 뒤바뀜의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창에 찔린 그리스도의 구멍 난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은 도마의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는 찰나.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숨겨진 목동에서

세상에 드러난 용사가 되는 역전의 순간.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극렬한 대비로

인생의 변곡점을

극적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슬쩍 보기에 카라바조답지 않은, 

고요함이 가득한 막달라 마리아의 그림은

어떤 극적인 순간을 담아낸 것일까요?


여인은 홀로 작은 의자 위에 앉아있습니다.

바닥에는 그녀의 목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진주 목걸이가 떨어져 있지요.

자신을 장식하던 값비싼 보석은

여인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진주 목걸이 옆에 놓인 기름이 담긴 옥합은 

막달라 마리아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카라바조가 추구했던 

극적인 변화의 순간은, 보이는 곳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변화의 증거가 되어

여인의 빰에 흐르고 있습니다.

눈을 감은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카라바조는 보이는 극적인 순간만을

그림에 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

어둠이 빛으로 뒤바뀌는 찰나를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가 찾고자 했던 '진실'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가 찾으려 했던 

진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추측하며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다만, 카라바조란 화가와 그의 그림 속에 잠시

들어왔다 나온 후 찾은 

나의 진실을 되짚어 봅니다.



환영했지만, 때로는 너무

눈이 부셔서 피하고도 싶었던 빛도,

그토록 밀어내고 싶지만

그럴수록 나를 뒤덮는 어둠도,

모두 나라는 그림을 이루는 일부라는 진실입니다.


내 안의 빛과 어둠으로 매 순간 

다툼이 일어납니다.

빛이 어둠으로 바뀌기도 하고

어둠이 빛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빛인지 어둠인지 모를 뒤엉킴 속에서

살아갈 때가 더 많기도 하고요.)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부딪힘을 동반합니다.   

그저 빛과 어둠이 뒤바뀌는 

충돌의 순간에 너무 당황하지 않기를.

너무 아프지 않기를.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마음이 부서져 조각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부서져 열릴 수 있다는" 문장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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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래도 더운데 결국 긴 글로 

읽는 분들에게 땀 흘리게 했네요.


"마음이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입니다."는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문장입니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더위에 살아남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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