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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Sep 30. 2021

이런 그림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지만

에밀 놀데, <최후의 만찬>, 1909


험한 인생을 살아온 듯한 거친 얼굴.

빈틈없이 어깨를 맞대고 앉은 사람들.


이런 최후의 만찬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나요?


에밀 놀데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최후의 만찬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었네요.

(학습의 효과란!)


놀데의 그림과 비교한다면,
다빈치 그림의 제자들은
얼굴도 의상도 참으로 있어 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물과 의상보다
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놀데의 <최후의 만찬>은

뭔가 어수선해 보이지만,

제자들의 시선은 예수님께 집중해 있습니다.

반면, 다빈치가 그린 제자들의

시선은 제각각입니다.

제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예수님은 슬픈 표정으로
마치 홀로 계신 듯합니다.


작가의 관심에 따라

같은 주제는 서로 다른

그림으로 표현되었지요.



다빈치의 관심은
유다의 배반에 있었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소식에,
제자들 사이에 혼란과 의심이 일어납니다.


반면, 놀데의 관심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 있었습니다.


성배를 꼭 쥐고 있는 거칠고 커다란 손,
비스듬히 감은 눈.
음울한 표정은 십자가를 앞에 둔

구원자의 비장함과 굳건한 결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중심으로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서로 가까이 모여있습니다.


놀데에게 최후의 만찬은

누가 배신자인가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배를 든 유일한 구원자와

두렵고 떨리지만 그를 믿고 의지하는

유대감을 가진 이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놀데는

화면 앞쪽에 등이 보이는 제자 옆에
빈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는 당신도 이곳에 앉길 바란다며.
(너무 과한 상상일까요? )



"대담하고 왜곡된 형태,

강렬하고 음울한 색체, 그로테스크한 얼굴" ,


이토록 강렬한 화법으로  

그가 전하고 싶은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점점 궁금해지는 작가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그림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란 마음을

내려놓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한 작가이기도 하고요.

(화법이 강렬한 사람을 힘들어하는 편이라...)


#참고 책_성서 미술을 만나다_김현화

에밀 놀데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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