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들을 돕고 있는 다음학교 교장, 교감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차 한잔을 마주하고 듣는
이분들의 이야기에 자주 마음이 일렁이더군요.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는 현장은, 기쁨만큼 어려움도 많습니다.
종종 저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두 여인에 대한 글을 정리하다 두 분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분주히 몸을 움직이며 예수님을 섬기던 마르다. 예수님의 발치에 가만히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
나는 마리아일까요? 마르다일까요? 이런 고민을 저만 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에도 이런 질문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바로 그 작가예요.)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작가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그렸지만, 베르메르의 그림은 좀 다릅니다.
두 여인의 시선은 한 분을 바라보고 있죠. 그리고 한 분은 두 여인을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온유한 시선으로, 부드러운 손끝으로.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 세 사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르다의 시선에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예수님의 손끝에서 마리아의 시선으로. (회전형 구도처럼 말이죠)
화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여인을 연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다음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자주 일렁였던 것은, 믿음을 행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