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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Nov 20. 2021

그는 너무 친절했고, 그녀는 뻔뻔했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2021> #2


쑥스럽지만... 이 사진이 작품을 보여주는 각도가 좋아서요


그의 작품은 친절했어요. 사운드, 영상, 설치로 구성된 메인 작품이 펼쳐지는 공간은  익숙한 곳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21>의 김상진 작가의 전시 현장, <비디오 게임 속 램프는 진짜 전기를 소비한다>입니다.


빨간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교실 풍경을 만납니다. 사운드와 함께 드러나는 희귀한 장면. 교사는 보이지 않고,

학생들의 몸은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얼굴은 영상 속에 파묻힌 채 말이죠.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을 친절하게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초록색 방에 매달려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는 오싹함과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선택한 사물 이외의 모든 것은 화면에 사라지도록 하는 크로마키의 그린. 자연을 상징하던 초록색은 가상 세계 속에서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초록색이 됩니다. 가상 세계의 초록 안에서는 인간 또한 언제든 지워질 수 있지요.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물의 풍경처럼. 


익숙함을 활용해서 친절하게 다가왔던 김상진 작가 다음에 만나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올해의작가상 2021> 두 번째 전시, 오민 작가의 전시는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게 합니다.


"이게 뭐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녀가 관객을 힘들게 만든 이유를 추측해 가다 보면 흥미로운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현대인이라면 주도권을 갖기 원하는 바로 그것...


오민 작가의 전시장 풍경 (사진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오민 작가는 과감하고 뻔뻔합니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 관객을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녀의 실험에 동참시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의 오민 작가의 <헤테로크로니의 헤테로포니> 전시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어두운 방에는 거대한 다섯 채널의 화면이 펼쳐집니다. 세 개의 화면에서는 한 여성의 얼굴이. 다른 한 개의 화면에서는 여성을 찍는 카메라 장비와 스텝들. 그리고 나머지 한 화면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영어 단어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영상에서 간혹 화음이 담긴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다른 얼굴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관객은 내용도 의미도 알 수 없는 화면을 어둠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어두운 방으로 된 전시장에는 거대한 화면들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작가는 영상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공간을 만들었지요)


영상은 관객을 경험 안으로 끌고 갑니다. 경험은 감정을 일으킵니다. 호기심, 흥미로움, 지루함, 혼란, 인내, 짜증, 불편, 불쾌 아니면 무관심.  사실, 이 모든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은 시간입니다. (저는 주로 전시장에서 지루함과 짜증, 불쾌를 느끼다가 뛰쳐나온...) 


오민 작가는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속도,  즉 익숙하지 않은 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작가가 통제하는 시간을 말이죠.


*

(여기서부터 약간 복잡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영상은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정보가 담긴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은 달립니다. 그래서 영상을 보는 이는 영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함께 달려야 합니다. 눈의 움직임도 생각의 속도도. (잠시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화면을 놓칠 수 있으니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상은 속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요. 속도는 시간과 연결되어 있기에, 영상으로 시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시청자가 1.5배속으로 설정해서 영상을 빠르게 보며 속도의 주도권을 쥘 수 있지요. 하지만, 영화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이란 이름으로 보는 영상의 주도권은 오롯이 작가에게 주어집니다. 


오민 작가는 작품 영상 안에서 강력한 주도권 행사하며 실험을 주도합니다. 영상의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느리게 경험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오민 작가의 전시실 안에 들어온 이상, 관객은 좋든 싫든 영상을 통해 그녀가 정한 속도와 시간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온 전시의 작품을 볼 수가 있으니까요)  


강요처럼 느껴지는 그녀가 정한 속도와 시간에 불편하다고 전시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인내했다면, 신기한 풍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렸을까요? 길고 느린 호흡으로 영상이란 캔버스 위에 여인의 초상화를 카메라의 붓으로 그려나가는 풍경을 말이죠.



오민 작가의 작품은 영상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속도와 시간 그리고 이것을 경험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속도와 시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속도와 시간의 주도권을 갖는 자가 신체, 정신적인 자유를 갖게 되니까요. 그래서 속도와 시간을 인간이 제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던가요. 그런 의미에서, 오민 작가의 실험은 흥미롭습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할지 말지 눈치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실험을 계속하는 이 과감하고 뻔뻔스러운 작가가 2021 올해의 작가상을 받지 않을까요? 아님 말고요.




예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내용을 전달받는다기 보다는
의문이 발생하고 사유가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오민 작가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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