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발레 카라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때가 있습니다.
(힘이 꽉 들어간 주먹을 마음속에서 막 휘두르고...)
그런 마음이 되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누군가의 눈을 응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두 인물이 서 있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습니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그리스도를 조롱함>입니다. 카라치는 클로우즈업 화면처럼 그 현장으로 우리를 쑥 당깁니다. 그리스도의 눈빛은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듯 곧 꺼질듯한데. 겨우 버티는 그의 머리카락을 한 남자가 움켜쥐고 있습니다.
가시에 찍힌 이마에선 피가 흐르지만, 움켜 쥔 주먹은 상관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다른 한 손은 모욕하는 손짓을 하고. 남자가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어도, 그래서 가시가 더 깊이 파고들어도, 손가락으로 모욕하며 그에게 침을 뱉어도...
그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찌할 수 없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할 힘과,
자신을 변호할 말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무능력함으로 이 시간을 끌어안기로 결정했습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대조적인 두 인물을 통해 십자가를 드러냈습니다. 캔버스에 십자가를 그리지 않고서도 십자가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무능력해 보이나 가장 강력한 사랑을.
모욕하는 인간의 손과 무능력하게 묶인 그리스도의 손.
분노하는 인간의 얼굴과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눈
교회 앞 카페에 앉아 커피잔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려...'
답답한 마음에 스마트폰에서 성경 어플을 열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_베드로전서 2장 24절
클릭하자마자 화면에 나타난 말씀.
상처와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이미 나음을 입었구나..."
불끈 쥔 주먹의 힘이 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