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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02. 2015

내 일이  먼지처럼 하찮게 느껴진다면

- 마음이음,  책으로 마음토닥토닥 -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그런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지죠.


그런 적이 있었어요.

퇴근 시간, 빗속을 뚫고 나타난 버스에는 사람들이 이미 가득했지요.

습하고 쾌쾌한 기분과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 너머로는 밤하늘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어깨에 이리저리 밀리며 할 수 있는 건

그저 견디는  것뿐이었죠.

한참을 달리다 빗물에 젖은 발자국만 남은

버스 자리 앉았습니다.

한쪽 손바닥을 희생시켜가며 창에 낀 서리를 닦아내 생각했죠.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 걸까?
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


존재보다 쓸모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 사는 내 얼굴이 보였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로 존재한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지니 마음이 아파왔죠.

내가 하는 일이 먼지처럼 하찮게 여겨지면

나 자신조차 하찮게 느껴고는 합니다.


이렇게 푹 젖은 마음이 될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청소부의 이야기죠.





그는 거리의 표지판을 청소하는 청소부입니다.

아마 수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청소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닦아놓은 표지판이 금방 더러워져도 그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죠.

"표지판은 말야 닦아 놓았나 싶으면 금방 다시 더러워지지.

훌륭한 표지판 청소부는 그런 일에 기죽지 않아.

더러움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않는 거야."


독일작가 모니카 페트의 그림책

<행복한 청소부>에 나오는 청소부는 특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닦던 표지판에 적힌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는 표지판에 적힌 음악가들의 음악을 찾아 기 시작했고, 도서관에 가서 표지판에 적힌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죠.

시간이 지나고 그는 휘파람으로 베토벤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괴테의 시를 읊으며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거리의 먼지를 닦는 일을 했지만
자기 자신도, 자신의 일도
먼지처럼 하찮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가 베토벤과 바그너, 바흐의 음악을 즐길 줄 알고

괴테와 바흐만, 실러의 책을 읽으며 감동할 줄 아는 남다른 청소부가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나와 내 일을 하찮게 여기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의 말처럼 그건 그 사람들의  '과제'일뿐이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나의 과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보면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내가 애쓰고 있는 일을

(그 일을 얘기할 때마다 비웃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표정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내가 먼저 소중 기려 합니다.

나르시시즘이면 어때요.

거울에 비친 나에게 쑥쓰럽지만

한번 말해보려고요.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면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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