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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ug 31. 2016

이미 사랑에 실패한 자, 누구인가?

#2.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로 시작된 사랑이야기

곁에 한 사람이 더 있으면

따뜻해지는 계절입니다.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을 펼치고

덮기까지 두 계절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빨갛고 얇은 책 한 권이 뭐라고

이렇게 오랜 시간 손안에 있었는지...


'왜 사랑이 두려운 걸까'를

묻는 나에게 한병철 작가의 <에로스의 종말>은

몇 가지 힌트를 귀띔하여 주었습니다.

(https://brunch.co.kr/@leeeum/89)


이제 그가 철학과 문학, 역사의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설명해주는 '사랑'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보려고 합니다.



사랑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주도권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밑도 끝도 없이, 우리를 급습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 사회,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
주도권과 프로젝트가 전부인 사회는
상처와 고뇌(passion)로서의 사랑에 접근하지 못한다

_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이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가끔 만납니다.

"먼저 주도권을 잡아"

한병철 작가는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자는 이미 사랑에 실패한 자이다."

주도권을 가지고 관계를 밀고 당기는 이가

덜 상처받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계산하지 않고 사랑했다면... 하는

후회가 상처로 돌아오는 시간에 부딪히면

그는 얼마나 아까요.




# 나에게서 걸어 나와 당신에게로


우정은 하나의 결론이다.
사랑은 절대적 결론이다.
사랑은 죽음, 즉 자아의 포기를 전제하기에 절대적이다.

"사랑의 진정한 본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포기하고,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버린다는 점"에 있다.

_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감정을 철학적인 표현으로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버린다'라고 말할 수 있었군요!

타인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마음으로는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걸까요.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는 두려움과 함께 나란히

걸어오나 봅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문학적으로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해주었습니다.


사랑이란 타자 속에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당신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한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에. 그리고 당신 속에서 나를 버린 뒤에
나는 나를 되찾는다.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하므로.

피치노는 사랑하는 자가 다른 자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지만
이러한 소멸과 망각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심지어 "소유"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유는 곧 타자의 선물일 것이다.

_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폭풍이 불듯 혼란스러운 시간을 견디며

화살 같은 말을 쏟아내도,

많은 을 기다

그는 한결같은 얼굴로 곁에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갈 일이라는 듯

건네는 그의 포옹에 기대어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이 있는 것 같아.


자신을 지우고 곁에

머물러준 그와 한 집에 살게 되었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의 몸도, 감정도, 시간도 나의 것이 아니더군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먹고, 자고, 쉬고 싶은 일상에서부터

차근차근 나를 지우는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를 지워가는 일에 익숙해지는 동안

아기는 젖을 떼고, 기며, 걸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났습니다.

작은 두 팔로 안아주는 아이의 품 안에서

나는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나를 변화시키고 있더군요.

사랑받고 싶어 하던 사람에서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 사랑이 폭력이 되는 순간


한병철 작가는 사랑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덧붙여 들려줍니다.


에로스의 힘은 무력함을 함축한다.

무력해진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고 관철하는 대신,
타자 속에서 혹은 타자를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자는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각각 자기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상대방에게로 건너간다.

_<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타인이 우선된다면 그것은 에로스(사랑)이지만

타인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뜨끔해집니.




사진출처: http://www.pholar.co/pic/10072/8122939


단지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

여전히 사랑은 어렵습니다.

어려운 사랑을 피해  

자꾸 다른 것에  

마음이 기웁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눈에 보이고,

성취감을 얻고 칭찬을 받으며,

타인 속에서 내가 사라지기보다

타인보다 내가 높아질 수 있는 일을

찾아 분주히 움직입니다.

사랑과는 그리 닮아있지 않은 일 속에서

사랑하며 좌절했던 마음을 위로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일은 결국 성공과 실패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는 하더군요.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나이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곳에

서 있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중심적인 사랑과 당신 중심적인 사랑,

그 사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을 뿐입니다.




꼬랑지:

<에로스의 종말>에서 한병철 작가는 타인을 우선하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에로스란 단어를 핵심 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 부분이 여전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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