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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ug 02. 2016

사랑이 두려운 마음에게  건네는 책 한권

#1 한병철<에로스의 종말>로 시작된 사랑 이야기

애달프게 사랑한 것을

그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 했 것은

사랑이었을까요?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을까요?


<에로스의 종말>의 철학자 한병 작가는

사랑이 두려운 이들에게,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사랑으로부터 도망친 이들에게 매섭게 얘기합니다.


잘 생각해봐.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



사진출처: http://www.pholar.co/pic/10072/8122939



# 나를 사랑해?

  사랑하는 감정을 사랑해?


사랑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타자의 공급이 넘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_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은 나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나와 타자, 그 사이를 쉼 없이 오가던 시간과 감정이 쌓여 사랑은 시작되지요.

하지만 만약 나 자신만 존재하고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가능할까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연못에 비친 하늘과 구름, 푸른 나뭇잎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얼굴과 감정뿐.

이런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 곁에

타인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병철 작가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끝없이 열려 있는 세계"이기에

우리에게 '에로스(사랑의)의 종말'이 온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타인도, 세상도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가득한

시대에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경향이 점점 강화되어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니다. 자기애를 지닌 주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는 부정적 경계선을 긋는다.
반면 나르시시즘적 주체는 명확한 자신의 경계를 확정하지 못한다.
그에게 세계는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줄 모른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_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20대에 만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일에 열정이 가득했던 사람이었지요.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열정에 마음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대학시절을 다 쏟아부었던 모임이 분열되려 했고,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고군분투 중이었으니까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하는 무력함과 좌절감에 휘청거리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직면한 상황과 절망에 대한 얘기를 다 쏟아내고 

그로부터 들은 것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 그런데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니?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하는데..."


사랑이란 애틋한 단어를 듣고도

음에서는 차가운 의심 싹텄습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하는 걸까?



두 감정이 전혀 다른 내용의

두 권의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 것 같네요.

그도, 나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나'와 '나의 감정'에 더 집중했던 나르시시즘에 빠진 

어린아 같았습니다.

그에 대한 기억을 애써서 떠올릴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안타깝게도 

내 안의 어린아이는 다 자라지 못한 것 같습니다.



# 함부로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은 피치노에 따르면 "전염병 중에서도 최악의 전염병"이다.
그것은 "변신"이다.
사랑은 인간에게서 고유한 본성을 빼앗고 그에게 타인의 본성을 불어넣는다.

_<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닮고야 맙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늘빛 파스텔처럼 참 밝고 부드러운 사람과

깝게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함께 한 시간이 쌓이자 

조금씩 그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날카롭고 회의적인 회색빛 말들이

가득 꽂혀 있는 뒷모습.

그와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마음도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상처는 그를 앞면과 뒷면

두 면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입니다.

그의 회색빛 차가움이 나의 마음에 닿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나는 조금씩 그로부터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배우 구혜선 씨의 인터뷰 중에 이런 질문이 적혀있었습니다


"소설, 그림, 영화감독 등 창의적인 작업많이 하셨는데요. 

구혜선 씨는 주로 어떤 것에서

영향을 받으시나요?"

나 또한 답이 궁금했던 질문이었기에

다음 문장을 찾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요



그녀의 말에 깊이 동의하며

마음 속에 메모해두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사랑이 두렵습니다.

사랑할 수 없을 두려웠지만,

이제는 함부로 사랑하게 될까 두렵니다.




<에로스의 종말>로 시작된 사랑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한병철 작가의 책은

현미밥처럼 꼭꼭 오래 씹어야

그 맛과 영양을 알 수 있지요.

철학과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한

의 문장을 사실, 저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깊은 사유가 담긴 그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전에 생각치 못했던 질문과 생각을 건져 올리고는 합니다.


작고 얇은 빨간책, <에로스의 종말>도

사랑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생각을 이리저리 머릿속으로 굴려보는 재미를 주는 책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듯해서,

<에로스의 종말>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이야기는

두 번째 글에서 나누어 보려고 해요.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린 '사랑'이 아니라,

음을 향해서도 뛰어갈 수 있는 '사랑'에 대해

한병철 작가의 <에로스의 종말>은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한병철 작가의

현미밥처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또 다른 책 이야기 <심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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