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소설 <홀>의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왜 함께 행복할 수 없었을까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어서 우정이 번성하는 친구" 사이처럼
희망이 없기에 사랑만으로 서로를 더욱 단단히 묶은
사이였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부모님.
인기 없는 과를 공부하고 대학원을 거쳐 박사 과정을 밟고 있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 않았던 남자.
기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실패하고 그나마 들어간 출판사에서
대표의 성희롱 사례를 폭로하는 바람에 8개월 만에 퇴사당한 여자.
승자만이 인정받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이들의 위치는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비슷한 시작점에 서있던 이 둘의 위치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여러 번 원고를 써 내려갔지만 어떤 책도 출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남자는 박사 논문을 완성하며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에"
교수로 자리를 잡습니다.
다소 무리를 해서 구매한 마당이 넓은 집으로 남자와 여자는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남자는 동기의 허물을 들춰내면서까지 동기가 실패한 자리에
자신의 성공을 껴넣는 데 성공합니다.
여자는 거실 탁자에 성공한 여성 작가나 유명 기자의 사진을
올려 두었지만 그녀의 하루는 그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정원을 가꾸거나 남편이 데리고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하루하루가
쌓여갔습니다.
그 시점에
남자는 여자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린다는 것.
_ 편혜영의 <홀> 중에서
남자는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건넨 원고에 대해 지적하고
왜 그렇게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느냐며 핀잔했던
자신의 모습을.
하지만 여자는 그 순간 남자의 목소리, 얼굴 표정,
손동작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후 어떤 원고도 남자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여자에게 조언했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건 전문가한테 맡기고 당신은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때?"
"다른 일?"
"이런 거 말고 당신이 성장할 만한 일 말이야."
'너는 성장하지 않고 멈춰있어'라는 말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얼마나 깊이 그녀를 찌른 지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아닌
스스로 쥔 칼끝으로
이미 자신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미 성장기가 지났어.
식물이야 계속 자라지만 사람은 아니야.
어느 나이가 지나면 더 자라지 않아."
남자와 여자.
그들의 시작점은 같았을지 몰라도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곳에 서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남자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위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수, 분주히 일을 하는 모습
이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그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서 있는 사람을 다르게 평가했습니다.
차갑고 이성적인 말로 여자의 도전을 갂아내 버린 부드럽지 못한 마음,
여자의 실패에 대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듯한 오만한 태도,
그런 남자를 탓해보지만
결국 여자를 제일 먼저 찌른 것은 여자 자신이 쥐고 있던 칼끝이었습니다.
남자가 서 있는 곳이 성공의 자리였을까요?
여자 또한 남자와 같은 곳에 서있고 싶었던 걸까요?
모두가 같은 위치에 오르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면
그 자리에 오른 자는 오만해지고,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자는 절망하게 됩니다.
여자에게는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성공한 여성들의 사진을 바라보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먼저 깊이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편혜영의 소설 <홀>에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을 넘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언뜻 비칩니다.
자신을 승자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평가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면
잠시 눈물을 닦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닌
내가 믿고 있는 성공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