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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Apr 10. 2020

#취준일기 1. 취준생도 행복하고 싶어

취업준비생이 되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취준생이 되었다.


정신없이 졸업하고 나니, '학생' 대신 '취준생'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2019년 겨울, 졸업 전시회를 마친 후 나는 공식적으로 '취준생'이 되었다. 졸업 전시회는 정말이지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만큼 머리털 빠지게 정신없었다. 그렇게 시간과 돈, 체력을 쏟아부어가며 졸업 전시를 마무리하고 나니 내게 남은건 밤낮이 바뀐 생체리듬과 진한 다크서클, 인간 불신.. 그리고 학생 대신 취준생이라는 달갑지 않은 딱지. 


사실 취업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번 시범삼아 넣어보자~ 하고 가벼운 마음에 넣은 원서 몇 개가 덜컥 붙어 낮에는 졸업 전시, 밤에는 포트폴리오와 사전과제를 하곤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막상 1차, 2차 전형을 합격하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괜히 연봉이나 복지도 검색해보며 '진짜 붙을지도 몰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졸업 전시 오픈식을 하고 2일 뒤, 그토록 기대했던 곳의 탈락 통보를 받았다.

주변에서 '넌 된다'라는 말을 너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면접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패배감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탈락 통보를 받은 순간, 자취방서 홀로 먹던 밥을 내려놓고 대성통곡을 했다. 행여나 헛소리를 할까 친한 동기들과의 단체 채팅방도 모두 나가기를 한 뒤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내가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잘 알고 있던 엄마는 한참 동안 이어진 내 울음을 들으며 '우리 딸 어떡해'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본가로 내려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로 며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에 기업이 한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슬퍼했을까 싶지만, 부끄럽게도 운좋게 노력하면 노력한만큼 돌아오던 결과를 받던 내 짧은 인생 속 처음으로 처절하게 깨진 경험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덜컥 시작했던 첫 취업 준비를 졸업과 함께 마무리 하고 '취준생'이 되었다. 




'행복한 취준생'은 가능할까?


'취준생'을 검색하니 나온 이미지. 이렇게까지 슬플 필요는 없잖아..



취준 생활은 자존감 싸움이다.

소속된 집단도 없고 사유도 모른채로 탈락의 고배를 반복하다보면 그동안 내가 이뤄온 모든 것들은 운에 불과했나? 나는 사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치 없는 인간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역시도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멋들어진 기업에 들어가 명함, 사원증 사진을 올리는 동기들의 모습이나 면접장에서의 미간을 찌푸린 면접관을 표정을 문득 떠올리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존감을 파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들쭉날쭉한 기분과 함께 졸업 후 몇 개월을 지냈다. 


뭐라도 하자. 어설프게 시작하기.

3일 동안 누워만 있기도 하고, 멀쩡히 대화하다가 울기도 하니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다 일단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집밖을 나와 카페에 앉아있기 시작했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휴대폰만 하기에 왠지 눈치 보이고 (사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지만) 늘어져 있기 부끄러운 마음에 괜히 네이버 뉴스를 뒤적이게 되었다. 


1일차, 2일차를 넘어 매일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두꺼운 책 속에 파묻힌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듯한 사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잠시 쉬러 온 사람, 노트북으로 연신 타이핑하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 곳에 와서 자신의 하루를 꾸려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것이 무기력한 마음을 떨쳐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집에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 카페 없이 못살아


여담) 도서관을 두고 카페를 가는 심정

왜 굳이 카페냐고 한다면.. 일단 카페에 가려면 침대(취준생의 절대적인 적이라고 생각한다.)에서 나와 씻고, 어느정도 단장을 하고 나와야 한다. 특히 우리집은 가장 가까운 카페까지 20분 가량을 걸어서 가야하는 위치인데, 햇살을 맞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뒤숭숭한 마음은 사라지고 활력을 되찾게 된다. 또한 카페라는 공간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공부' 혹은 '독서'라는 어느정도 일관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도서관이나 독서실보다 활기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취준생은 사람 만날 일이 정말 없다. 스터디나 아르바이트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건 활력을 주고 받기 보다는 소모하는 모임에 가깝다. 나는 복작대는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일을 끝내는 경험. 그런 경험들이 하나하나 모여 성취감을 이룬다고 믿는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 브런치 매거진을 시작한다. 

자기만의 속도와 가치를 믿고, 쌓아올려 가는 내 행복한 취준 생활을 담고 싶어서,

어설프겠지만 조금씩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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