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생각했던 미국이 이거지
지정학적으로 한국인들은 세계정세에 민감하다. 나는 그 민감함에 날을 세워 국제 정치를 전공했고, 쓸모없는 석사까지 해가며 엄빠로부터의 독립을 미뤘기 때문에 나의 각국에 대한 감정은 꽤나 분석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게다가 해외여행을 좋아하고, 해외 출장까지 잦았던 탓에 여행지로 생소한 나라들(오만,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등)도 많이 갈 수 있었던 행운까지 있어 각국에서 살 때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기 까지 했다.
애당초 미국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선입견은 있었다. 주류에 대항하는 반골기질을 가진 나는 미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 살다니.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힝구와 같이 살 살림살이를 준비하기 위해 들렀던 마트들에서 가장 먼저 목격한 건 무분별한 플라스틱 백(비닐봉지)의 사용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닐봉지를 사용했다. 각 계산대는 바코드를 찍는 직원과 봉지에 물건들을 넣어주는 이가 자리했고, 쇼핑한 모든 아이템마다 봉지에 담아주는 기이한 포장법에 벙 쪘다. ‘한국에서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이곳에서 상쇄되고 있구나.’ 의식 있는 세계 각국의 환경 친화 정책과 시민들의 노력은 좁은 땅과 밀집되어 있는 인구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는데 너른 땅이 끝없이 펼쳐진 이곳에선 아무도 환경이나 기후 위기 등에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환경보호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누군가는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의 결과로 삶의 터전마저 짓밟히고 있는데. 자원과 자본, 모든 것이 풍족한 이곳에선 분리수거도 없이 모든 쓰레기를 한꺼번에 처박는다. 모두 매립을 하거나 수출하는 쓰레기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먹다 남은 커피도, 유리병과 함께 하나의 봉투에 담겨 실려 간다.
나의 미국에 대한 선입견은 단 몇일만에 사실로 검증되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시카고 같은 커다란 도시에선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환경 규제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 역시 실천하겠지만 이 땅 대부분에서는 플라스틱을 마음껏 사용하고 마음껏 버리는 것이 일상일 것이다. 천국에서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씁쓸한 현실 속에서 분리수거함이 없는 쓰레기통을 바라보며, 나도 비닐과 음쓰를 한통에 때려 박는다. 그렇게 말고는 어찌할 도리도 없다. 하지만 정말 정말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고자 엄마가 준 표범무늬 장바구니나 친구가 준 하와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I will put it in my bag.”(제 장바구니에 담을게요.)라고 말한다. 텍사스 사람들에겐 ‘별꼴’로 보일 내 행동을 누군가가 보고 실천한다면 나의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들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부 정책과 기업의 변화다. 개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가 외쳤지만 아직까지 실천되지 않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에 있었던 나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우리 정말 잘하고 있어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잘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