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차를 사주면 좋아할까?
힝구는 내가 집순이가 되어 우울해할까 봐 많이 걱정하지만 나는 나름 잘 지낸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활발한 내 모습 (퇴근 후에도 밖을 전전하며 친구들을 만나고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한국에서 모습)은 나의 일부일 뿐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해외에서 귀국 후 2주간 집에서 격리를 할 때도 나는 평온했었다.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하고, 지점토로 불두까지 만들며 재미있게 재택근무를 해냈다.
하지만 나름 잘 지내는 건 완전 잘 지내는 것과 다르다. 앞으로 한 동안 살아야 하는 곳이기에 마음을 비우고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찐 토종 한국인이 나에게 이곳의 생활은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것투성이다. 내가 사는 휴스턴 우드랜드는 어딜 가더라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걸어서 슈퍼에 가거나 조용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생활은 이곳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넓은 땅 때문인지 상점들은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사장님의 취향을 반영한 작은 카페들은 거의 없다. 산책은 찻길에서 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리도 찾기 힘든 이곳은 정말 미국 같은 곳이다.
사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과 비교하며 구리다고 투덜거리는 나의 자세가 잘못 됐다는 건 인정한다. 지금까지 여행하고 출장을 다녔던 장소들은 도심이었고 인구 밀도도 이곳에 비하면 한참 높았지 않은가? 걸어서 다니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친숙한 분위기를 원하지만 앞으로 살아야 할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건 꽤나 큰 좌절감을 준다.
그러던 중, 힝구는 나에게 밖으로 나돌아 다니라고 차를 사줬다. (고마운 힝구) 하지만 그런 힝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고 마트에 가거나 스타벅스에 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장은 힝구와 보는 것이 즐겁고, 똑같이 찍어낸 스타벅스에 가고 싶진 않다(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는 음료보다는 공간을 소비하러 카페에 가는 사람이다.) 가고 싶은 곳이 없는 데다, 백수가 되어 돈을 벌지 않게 되자 심리적으로 소비활동에 제약이 생겨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었는데 힝구의 돈을 쓰자니 마음이 좋지 않다. 남편의 등골 브레이커가 된 느낌이랄까?(왜 이런 생각을 부모님이 나를 키울 땐 못했는지 약간의 반성을 한다. 더불어 힝구가 한국에 살며 나 혼자 돈을 번다면 힝구가 내 돈을 눈치 보지 않고 썼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 힝구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요즘은 힝구가 없는 시간 대부분을 집콕하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책을 읽는다. 취미 부자라서 다행이다. 일을 쉰 지 한 달 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초조해한다는 건 내가 얼마나 삶에 대한 여유가 없어왔나를 반증하는 감정이 아닐까? 갈피를 못 잡는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합리화해 본다. ‘앞으로 남은 평생 일해야 하는데, 잠시 쉬면서 놀아보자고. 언제 남편 돈 써가면서 놀아보겠어?’ 침대에 누워 나는 본격적으로 힝구에게 기생하겠다고 선언했다. 힝구는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마음 깊은 힝구가 나를 잘 이해해 줘서 참 다행이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곳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미국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포용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 이곳의 좋은 점 몇 가지를 적어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실제로 사람 냄새나는 일이 많다. 날씨 좋을 때면 산책을 하며 동네 마실을 나가는데, 주택가를 돌아다니면 차에 탄 운전자들이 손인사를 해준다. (처음에는 왜? 굳이? 했지만 이젠 나도 손을 까딱한다.) 교차로에서는 모두가 서로 가라고 양보해 주고, 상점에서는 꼭 문을 잡아 주며 모르는 이와 눈을 마주치면 찡긋 인사한다. 삭막한 사막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듯 나도 이곳에서 꽃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