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 속 집밥으로 살아남기
내가 있는 텍사스는 식료품은 싼데 인건비가 높은 탓에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은 엄청 비쌉니다. 비싼 만큼의 맛을 낸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하죠. 동네 브런치 카페에서 계란 후라이 두 개, 식빵 한 조각, 베이컨 두 개가 9불 이더군요.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팁 문화는 소비자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서비스의 대가를 강탈당하는 느낌이지요. (팁은 거의 반 강제로 지급하게 되어 있거든요. 최소가 음식값의 15% 정도예요.) 그리고 모든 음식과 공산품에는 별도의 세금이 따로 붙습니다. 부가세가 이미 제품 가격에 반영된 한국과는 다르죠. 메뉴와 물건에 적혀있는 가격과 계산서에 찍히는 가격이 너무 달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야? 계산이 잘못됐나?‘ 했었죠.
한 번은 힝구(남편)와 일본식 돈까스 도시락과 돈부리를 파는 식당에 갔습니다. 번지르르하게 보이는 식당의 겉모습과는 달리 음식의 질은 대학생 시절 교내 식당의 푸트코트 보다도 못한 ‘미국식’ 요리가 나와 엄청 실망했지요. 그 와중에 서빙을 하는 젊은 친구는 어찌나 자주 와서 "Are you guys, good?(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같이 우리의 안부를 묻는지. 밥 먹는 도중 웃으며 맛없는 음식에 예의상 ‘It’s good.(괜찮아요.)’ 이라며 대답까지 해줘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죠.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팁을 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맛없고 단촐한 식사 후 50$을 쓰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절대 안 사 먹어.' 이런 탓에 외식은 자제하고 열심히 요리를 하게 됩니다.
미국에 오면서 백수가 된 나는 힝구가 출근하면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합니다. 새로운 직업인 주부로써 샐러드용 야채도 손질해 놓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죠. 그런 뒤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주부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는 음식 재료 손질입니다.
웅녀가 낳은 단군의 후손답게 내가 하는 요리에는 마늘이 엄청 소비됩니다. 그런 탓에 마늘을 많이 사 오라고 힝구에게 심부름을 시켰을 때 힝구가 마늘의 외형이 그대로 유지된 ‘생마늘 한 망’을 사 오니 조금은 당혹스러웠습니다. 나는 그걸 까고 다지는데 4시간의 시간을 보내며 현자타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4시간 일했으면 돈이 얼마야. 업무시간의 절반을 마늘 까는데 쓰다니.’
백수가 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며 아까워했습니다. 그러다 문뜩 떠올랐습니다. 우리 할머니, 외할머니가 깐 마늘들을요. 두 분은 항상 마늘을 한 접씩 사거나 밭에서 캐다가 일일이 손으로 까서 손질해 놓고, 딸 아들, 손자들이 편하게 먹으라고 갈 때마다 양손 가득 주셨거든요.
알싸한 마늘을 하루종일 까느라 손이 아리게 부었을 텐데 불평불만 없이 표시도 안나는 궂은일을 하셨다는 게 떠올라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의 시간도 당신의 시간도 똑같을 텐데 고작 4시간 마늘 깠다고, 어차피 다 우리 입에 들어갈 소중한 음식을 장만하는데 쓸데없는 일이라고 투정 부린 것 같아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지요.
하지만 반성의 시간은 코스트코의 대형 깐 마늘 봉지를 보고 바로 사라졌습니다. 1킬로는 되어 보이는 깐 마늘이 10불 정도였지요.
'더 이상은 마늘을 까지 않겠어. 여기서 깐 마늘을 사 먹으면 되겠군.'
마늘 까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백수는 내 몸 편하고자 깐 마늘을 향후 쇼핑리스트에 저장해 둡니다. 현대사회의 소비재들은 이렇게 사람을 게으르게 만듭니다.
4시간을 들여 깐 마늘들은 블랜더로 갈아서 일회용 위생팩에 넣고 얇게 편 다음 칼등으로 홈을 만들어 큐브처럼 똑똑 떼어 쓸 수 있게 만들어 얼려놓았습니다. 할머니가 알려준 꿀팁이 드디어 내 생활에도 이렇게 적용이 되는군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미국 물가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밍밍한 입맛에 맞춰진 외식 요리들로 나는 강제 집밥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동생과 둘이 살며 저녁 정도 가끔 한 그릇 요리로 뚝딱 만들어 먹었지만, 이곳에선 삼세세끼, 남편도시락까지 만들며 지냅니다. 아직 적당량을 맞출 수 없어 3인분 같은 2인분을 만들어 내며 힝구와 나는 오동통 살이 오르고 있지요. 맛과 건강을 다 담아낸 집밥 요리를 하며 나는 오늘도 텍사스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