힝구의 온기
미국에 온 지 3주가 다 되어가는 앙순(나)은 심한 감기 몸살에 3일간 시달렸다가 간신히 회복의 기로에 들어섰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걸지도 모르죠. 어제저녁 힝구가 사 온 타이레놀을 먹은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요. 앙순이 집에서 아픈 동안 힝구는 걱정이 되었는지 하루에 네다섯 번씩 전화를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땐 하루 한번 전화해라고 해도 문자 하면 되지 하던 사람이 어지간히 걱정되었나 봅니다.
타지에서 혼자 아픈 건 참 서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나처럼 약물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는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더뎌서 더 그렇죠. 힝구는 삼일을 쉬기 위해 미리 이틀 치를 일하러 새벽부터 회사에 나갔습니다. 엄청난 유연근무제죠(힝구 직장 만세). 회사에 나가는 힝구에게 도시락을 쥐어주고 배웅을 했습니다. 비몽사몽이었어요. 그리고는 아직 남아있는 힝구의 온기를 찾아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얼마 못 가 사라집니다. 혼자서 이불 안의 공기를 데우려 해도 여전히 춥기만 합니다. 바깥 온도가 27도인 텍사스에서 감기에 걸리면 답이 없습니다. 히터도 없는데 환자는 여전히 추우니까요. 전기장판이 간절한 때에 가장 따뜻한 36.5도짜리 난로가 일터로 떠나가 버리고 아파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로 짝꿍을 기다리는 건 엄청 지루한 시간의 연속입니다.
아픈 와중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습니다.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 엄마는 화면에 있는 저를 보자마자 울더군요. 울 엄마는 울보예요. 그런 엄마를 보고 저도 따라 울었고요. 이번에는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의 자그마한 옷가게에는 엄마 친구 갑정 아줌마도 함께 있었죠. 나는 엄마에게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며 팔다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서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했어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선 바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역시 울보에겐 아프다는 말을 하면 안돼요. 따라쟁이인 나도 또 한 번 울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고작 7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심심해서 시어머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도 혼자 한국에서 새집 꾸미기에 고군분투 중이셔서 저에게 마음 쓸 여력이 없을 텐데도 제가 아프다고 하니 ‘생강즙을 내려먹어라, 죽을 끓여 먹어라’ 하시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니 조금 덜 아파진 기분입니다. 쏭도 다돌이(마이 베프)도 제 걱정을 해줍니다. 아픈 사람은 주변의 걱정과 염려를 먹고 회복하나 봅니다.
충전이 100% 되지는 않았지만 햇볕을 좀 쬐어야 몸이 나아질 것 같아 근처에 있는 숲을 산책했습니다. 힝구와 내가 같이 아는 유일한 노래 ‘여러분’을 목 놓아 부르며 아무도 없는 숲 길을 걸었습니다. 숲이 내뿜는 공기와 우리의 불협화음을 맞교환하니 폐가 살아 숨 쉬는 듯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젠 조금 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