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는 공부하고 싶다.

커뮤니티 칼리지 무료 영어 수업 신청기

by 한양희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습니다. 걸어서 10분, 차로는 3분도 안 걸리는 거리죠. 이곳에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영어수업을 제공합니다. 수업을 듣기 위해 선생님과 약속을 잡아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하죠.


프로그램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신청했습니다. 무료한 백수생활을 탈출하고 학생으로 신분을 세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친구들도 사귀고 말이에요.

오랜만에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설렜습니다. 미국에 와서 할 일이 없으니 여러 온라인 강의들만 듣던 중, 실제로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기대도 되고 살짝 긴장도 되더군요.


아침 10시 반. A 선생님과 약속을 잡고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가족사진과 십자가 몇 개가 벽에 붙어있었습니다. 사무실은 선생님이 가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걸 소리 없이 하지만 아주 강력하게 외치고 있었지요.


사실 A 씨를 만나기 전에 작은 뒷조사(?)를 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구글에다 검색해 본 거죠. 그의 이름을 치자 지역 신문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이 나온 기사는 열두 살 어린이를 성추행 사건이었습니다. 성추행 혐의와 함께 꼬불꼬불한 짧은 머리칼과 깊은 검은 눈을 한 사진이 기사에 떴습니다. 힝구(남편)는 ‘에이 설마, 어린이 성추행범이 어떻게 교육시설에서 일하겠어. 동명이인이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설마는 역시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말이죠. 설마에서 역시가 되는 일이 두려워 일부러 힝구를 대동하여 학교에 갔습니다. 그렇게 만난 A 선생님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확인한 그 얼굴이었습니다.

아...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A 씨가 나의 선생이라니...


하지만 다행인지, A 씨는 내가 무심히 내뱉은 헬로(Hello~) 만을 듣고 내가 영어의 생초보가 아님을 판단하고서 나는 아카데믹 클래스를 들으러 가야 한다 했습니다. 공짜로 듣는 수업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다음 학기 시작인 3월에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허허허... (A 씨는 성추행범이 아니겠죠? 무혐의로 풀려났으니 거기 있겠죠?)


학교 가기 미션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쾌적한 학교시설이 가까이 있는 것을 확인해서 그런지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도서관과 학생들이 가득한 캠퍼스는 이상하리만치 정답습니다. 교직원으로 꽤나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비가 오네요.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텍사스에도 겨울이 오나 봅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27도였는데 어제부터 아침기온이 3도로 뚝 떨어졌습니다. 추운 겨울. 집 밖은 위험합니다. 3월까진 꼼짝없이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겠습니다. 가끔씩 캠퍼스 순찰을 나가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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