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부부싸움
“3년간 가지고 있던 멤버십이야. 이번에 갔다 오면 취소해야겠어.”
남편은 토트넘 멤버십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3년간 단 한 번도 경기를 보러 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직장 후배를 위해 경기를 예매해 준 이후에 자신도 꼭 손흥민이 뛰는 경기를 보러 런던에 가야겠단다. 그렇게 우리의 3박 4일 런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떠나기 하루 전, 런던의 맛 집과 관광코스를 단 10분 만에 정리해 주는 유튜브를 보고 동선을 짰고, 비행기에 올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추진한 여행이 아니라 그런지, 큰 설렘이 없었다. 간 김에 봐야 하는 곳들을 지도에 표시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애플페이를 설치하면서 새삼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전에서 서울 가듯 이토록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처음 엄마, 아빠를 모시고 간 태국, 중국 여행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모른다. 스마트 폰이 없던 그때는 인터넷 카페들에서 정보를 찾아 옮겨 적고 지도를 출력해 들고 다녔다. 환전을 하고 유심칩을 사고 여행을 준비하며 설렘이 가득했던 그때가 사라지고, 핸드폰 하나와 카드 하나, 여권만 챙기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오늘. 기술의 발전이 모든 것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그로 인해 여행을 준비하는 자의 마음속 기대와 설렘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는 것이 지구촌의 지구시민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버린 슬픈 현실이다.
남편에게 영국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한 게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막상 공항에 내리니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드라마에서 듣던 영국 엑센트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로 적힌 익숙한 표지판들을 따라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미국에 있으면 좀처럼 탈 일 없는 지하철을 타니 여행지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긴 비행동안 울렁거렸던 속을 쌀국수로 달래주고 영국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토트넘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은 시의 외곽에 있었고, 지하철에서 내린 후 30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경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움직이며 인간 파도를 형성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 쌓여있으니 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남편과 같이 붙어있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해 우리는 떨어져 경기를 봐야 했다. 분명 함께 보았으면 같이 응원하고 욕하는 맛에 재미가 배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옆에 앉은 대머리 삼총사 아저씨들이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향해 영국식 영어로 욕을 내뱉었을 때는 그 발음이 너무 이질적이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본 손흥민 선수의 체격은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3대 1로 이겼지만 경기내용은 아쉬웠다. 프리미어리그의 품격을 갖춘 패스나 슈팅이 거의 없었다. 대전에서 본 유소년 월드컵 경기보다 박진감이 떨어졌다. 승리의 기쁨과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인파를 비켜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는 배고픈 남편을 위해 런던브릿지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학생이 유럽에서 가장 맛있었던 중국집이라고 소개한 그곳을 찾아갔을 때는 9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다. 분명 구글 맵스에는 10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도착하자 종업원이 의자를 테이블에 올리고 있었다.
남편은 배가 고픈 데다가 화장실까지 급했었나 보다. 나 역시 경기장을 출발할 때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남편이 늦게 나가면 사람들이 많아 가기 힘들다고 해서 참고 있던 터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열정적으로 화장실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고 마침 근처에 있던 Five guys(미국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에 들어갔다. 영국까지 온 데다 경기 내용에도 실망한 나는 저녁만큼은 로컬식당에서 먹고 싶었다. 실패한 하루를 보상하는 것처럼. 하지만 남편은 햄버거, 프라이에 음료까지 시키고선 화장실로 달려갔고, 나는 햄버거를 시키지 않은 채 그런 그를 기다렸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니 그는 혼자서 햄버거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힐긋 쳐다보며 햄버거 먹기 싫으면 나가서 다른 거 먹고 중간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기가 먹고 싶다던 중국집을 찾아 이곳까지 왔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까지 참았는데, 자기 혼자 입에 음식을 우물거리며 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나가서 먹고 싶은 걸 먹으라니. 정말 오랜만에 큰 빡침이 몰려왔다.
먹고 있던 햄버거를 뺏어다 던지고 고함을 칠까. 정말 밖으로 나가버릴까. 혼자 집에 가버릴까. 남에게 말 못 할 높은 수위의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지만 결국엔 묵묵하게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삼초만 참으면 돼. 마음을 다스리자. 심호흡을 하자. 나는 사회인이다. 나는 지성인이다.’ 날뛰던 마음을 다잡으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쉽게 화가 날까? 이렇게 극단적 상상의 나래를 펼칠까? 화날 일이 많은 일상에서 조용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이 같은 분노를 의식적으로 참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애당초 이 정도로 화가 나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못된 남편이 햄버거를 다 먹고 쟁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나는 셰익스피어가 즐겨 찾았다는 바에 가서 피시 앤 칩스를 먹고 타워 브리지를 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런던에 온 첫날 아니던가. 햄버거 가게를 나온 나는 그가 뒤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말없이 걸었다.
30분 정도 열심히 걷고 있다 뒤를 돌아봤는데 어느 순간 남편이 사라졌다. ‘이 나쁜 놈이 끝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는구나.’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나에겐 카드도 없었고 핸드폰 배터리도 18프로밖에 없었다. 앵커스 바는 50분 뒤면 문을 닫았고, 길을 찾기 위해 구글맵스가 필요했던 나는 줄어가는 핸드폰 배터리를 보며 불안에 떨었다. 결국 남편 놈에게 ‘나 카드 없으니까 주고 가.’라는 카톡을 남겼다. 돌아오는 답장은 가관이었다. ‘내일 복귀한다. 짐 싸.’
점점 더해가는 못되어먹은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국제 미아가 될 수는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호텔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서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배고플 때 꼭 심술을 부리는 그의 전력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늘 먹을 걸 옆에 챙겨 놓았다. 통통한 내가 살을 빼지 못하는 이유도 계속해서 먹을 것을 공급해줘야 하는 임무로 인한 것이라 그의 탓을 잠시 해본다. 이번엔 공복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시차적응이 안돼 피곤한 데다 화장실까지 가고 싶어 더 그랬는지 못됐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사람이 신체의 욕망에 굴복하고 감정적으로 이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지, 나는 원초적이고 비이성 적인 그의 행동을 여전히 이해 할 수 없다. 그저 그런 사람이니 받아들이고 외우는 수밖에. 남편과 비슷하게 아빠 역시 배고프면 화를 내는 (Hungry+Angry=Hangry) 행그리 스타일이다. 나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남자들은 왜 이런 건지. 예전부터 아빠 욕을 해가며 남편에게 각별히 주의를 줬음에도 이번처럼 해외에서 무방비 상태로 행그리를 당하니 화가 나고 서럽기도 했다.
어찌어찌 호텔에 도착한 나는 방키도 없어 로비에 새로 요청을 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에 남편 놈은 아직 와있지 않았다. 샤워를 하려고 할 때 즈음 그가 들어왔다. 나는 씻고 침대 구석에 가 웅크리고 누웠다. 너무 피곤해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새벽 두 시였다. 남편 놈도 저쪽 침대 끝에서 자고 있었다. 피곤함에 다시 잠을 청해 봤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늘 그와 꼭 붙어 자던 습관 때문인 듯했다. 너무너무 미웠지만 잠이 들기 위해 할 수 없이 그의 옆에 붙었다. 남편은 이때를 기다린 것 마냥 돌아눕더니, “잘못했지?” 한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의 궁뎅이를 찰싹 때렸다.
“내가 얼마나 서러웠는 줄 알아? 핸드폰 배터리도 없고, 카드도 없었어. 게다가 자기도 배터리 없는 거 알아서 길 잃어버릴까 봐 걱정했다고.”
그랬다. 그 와중에 남편이 길 잃을까 걱정까지 했다. 미워 죽겠는데도 부부인지라 걱정을 하고 있었다.
“카드 없으면 애플패이로 사 먹으면 돼지. 얼마나 배고팠을꼬.”
나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그가 조금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화난 마음이 풀린 건 아니었다.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야. 여보의 태도가 문제인 거야. 내가 여보를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까지 참았는데, 왜 당신은 자기밖에 모르고, 못됐게 얘기해야 하는 거야?”
“시간도 늦었는데, 또 다른 걸 먹으러 간다고 햄버거를 안 먹는다고 하니 그렇지.”
“여긴 미국 깡촌이 아니야. 런던이라고. 우린 여행을 왔잖아. 여기서 햄버거를 먹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배고프다고 짜증 내면 안 된다고 했지? 화장실도 가고 싶으면 진작에 갔으면 됐잖아.”
내 말이 다 맞다는 걸 알았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그는 계속 내가 배고파서 어떻게 하냐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사과를 받아야만 했다. 호텔로 돌아올 때 돈도, 카드도 없이 아무도 없는 기차에 앉아있을 때 그 기분을 그는 모를 거다. 그래서 그의 궁뎅이를 또 한 번 찰싹 때렸다. 하도 쌔게 때려서 손바닥이 얼얼했다.
“잘못했지?”
“응, 잘못했어. 미안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사과가 돌아왔다. 사과를 받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 궁뎅이 몇 대를 더 때렸다.
뜨거운 엉덩이를 부둥켜안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찝찝한 사과를 받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배고프니 잠이 달아났다. 나는 또 사람이 이루어진 ‘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참고, 누군가는 내뱉는 이유가 무엇일까? 같은 곳에서 출발해 같은 여정을 함께 했음에도 나는 참을 수 있었고, 남편이 못 참았던 이유를 나는 체력에서 찾았다. 나는 아직 런던을 살필 체력이 있었고, 남편은 방전이 된 상태였던 거다. 백수인 나는 운동을 하러 다니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지만 그는 3박 4일의 일정을 만들기 위해 오버타임을 하며 몸을 불살랐다. 놀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내 남편. 그런 그를 조금 이해했다면 한 번쯤은 먹기 싫은 햄버거를 먹어 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판단도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나는 또 그를 이해하고 그를 보듬게 되었다. 물론 그 순간 그때의 분노와 서러움은 폭발할 만큼의 에너지를 지녔었지만 그 당시에도 이 또한 지나갈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런던에서 남아있는 여행 기간 동안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한껏 때려 벌게진 그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앞으론 엉덩이 때리는 것도 그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