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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pr 23. 2024

하나의 영화를 100번 봐야 한다면

나의 영화 입문기


  영화관에서 가장 처음 본 영화가 생각난다.

  2002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대구에 놀러 갔다. 대구의 동성로, 지금은 없을 ‘한일극장‘에서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함께 간 친구 쏭은 이미 자신의 언니와 몇 번 대구에 나온 적이 있단다. 맞이인 나는 그럴 때면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쏭은 친구들 중 늘 뭔가를 먼저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골 소녀가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디 아더스였다.

  처음 극장에서의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다. 12세 관람가인 그 공포영화는 겁쟁이인 내가 겨우 겨우 볼 수 있을 만한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팽팽한 낚시 줄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날카로운 곳에 베여 ‘팅’하고 잘려나가는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은 극대화된 긴장을 단숨에 확 끊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어두컴컴한 극장 안 스크린 위에 뜬 화면. 사방에서 들리는 커다란 음향.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모든 순간에 몰입하고 모든 순간에 압도되었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강조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찰떡같이 들어맞는 경험이었다. 전자 미디어, 영상물,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같은 내용이라도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방법과 능력을 다르게 만들었다. 디 아더스를 책으로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빠른 전개 속도와 몰입감이 영화 속에 있었다.


  영화관 없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대학에 진학해 엄청난 양의 영화를 보게 된다. 시골에서는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콘텐츠들이 대도시에는 존재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으며 이미 있던 것조차 나는 모르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콘텐츠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으로 극장에도 자주 갔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공강이나 주말에 도서관 시청각실 앉아 DVD나 비디오테이프들을 쌓아놓고선 영화를 보곤 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많은 제목들과 이야기들. 주로 고전과 독립영화들을 보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쌓았다. 모두가 열광하는 흥행작 보다 특이하고 독특한 시도로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예술영화들, 문학을 영화로 만든 작품들, 역사나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봤다. 20대 초반의 나는 대학생으로서, 지성인으로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런 욕심들을 문학과 영화로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가끔은 너무 많이 알아 잘난척하기도 하는 엘리트주의자를 내 안에 키워냈다. 놀랍게도 지금은 가물가물한 옛 영화의 기억들. 내가 본 영화들의 제목이라도 적어뒀으면 좋았을 텐데.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은 탓에 열심히 본 영화의 기억은 뇌에 골고루 스며들어 있을 뿐, 내뱉고 싶을 때, 오래된 기억은 서랍장을 열듯 척척 하고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보았던 영화들이 기억 저편 어딘가에는 남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의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영화를 통한 간접체험으로 조금은 독특하고 이상한 오늘날의 세상 이야기도 곧 잘 받아들이게 된 거라 생각한다. 일종의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는 아주 다양하다. 특히 영상 매체로서 현실을 그대로 담는 고증에 충실하기보다 상상을 시각화해 표현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터널 선샤인]처럼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꺼내기 싫은 기억 속에 주인공이 숨는 장면은 꿈속을 보는 것만 같다. 인간 삶의 비극과 진실을 다룬 작품들도 좋아하고 (ex, [트와이스 본], [시베리아의 이발사], [그을린 사랑]) 훌륭한 이야기 구성으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도 좋다. 최근 넷플릭스가 만든 [Leave the World behind]나 [Don’t look up]은 인류가 직면할 가능성이 충분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현실성 있게 풀어내며 팽배해져 있는 타인에 대한 불신과 스마트폰, 전자기기,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감상회를 열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


  음악과 춤이 함께 하는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거기에 가족의 이야기와 역사적 배경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대표적인 예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소설을 쓰고 있는 요즘,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지역적인 스토리가 인류 공통의 슬픔과 아픔,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걸 최근에 다시 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며 느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핍박받는 받아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러시아 ‘아나테프카’의 유대인들의 모습, 오래된 관습을 벗어버리고 연애결혼을 하거나 심지어는 러시아인과 결혼하는 딸들의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느 시기나 있었던 정치적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 가족 간의 사랑을 담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볼 때마다 눈물을 짓게 만든다. 전통과 현대의 삶 속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에 비유하는 제목마저도 문학적이다. 모든 개인은 탄생의 순간부터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착지에 가기까지 세밀하게는 다르더라도 큰 줄기에서는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에 타인의 이야기에서 감동과 교훈을 얻는 것 아닐까.

  그 외에도 음악을 담은 영화들 중 라라랜드, 원스, 싱 스트리트, 비긴 어게인은 잊을 수 없는 명곡들로 머리를 가득 메우는 작품들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담을 수 있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은 우리를 늘 새로운 곳으로 이끈다.




  세상의 모든 미디어가 서비스를 멈추고, 인터넷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하나, 단 하나의 영화 만을 고를 수 있고, 그 영화만 평생 볼 수 있다. 어떤 영화를 고를 것인가.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으로 우리가 얼마나 다른 인간인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나? 쉰들러리스트. “ 쉰들러 리스트라니.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고, 훌륭한 영화이지만, 남은 평생을 하나만 봐야 하는데 쉰들러 리스트? 남편은 인간이 가진 특성 중,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를 조명하는 영화기에 그 영화를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평생을 보기에 너무 많은 고통이 담긴 영화다. 게다가 흑백 아니던가.

  ”그럼 자기는 뭐 볼 건데? “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 볼래. “

그렇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보다 계속해서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를 선택했다. 나는 예쁜 것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인 데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지 않았던가? 평생 하나의 영화를 봐야 한다면 아름다운 노래와 율동, 역사도 조금 감미되어 있고, 사랑과 감동까지 담고 있는 서사물, 영상예술의 집합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이유로 앞으로 평생 하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서는 비빔밥을 택했다. 비빔밥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 평생을 먹어야 한다면 골고루 다양한 영양소를 취할 수 있는 데다 질리면 몇 가지 재료를 빼고 더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은 비빔밥이었던 거다.

  실제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50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이 영화는 그 당시 엄마의 최애 영화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나는 바로 비디오를 켜 계속해서 돌려봤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 연장은 물론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DVD로 얼마나 돌려 봤던지, 지난달 남편과 함께 다시 본 영화에서 대사와 노래 가사들을 줄줄 읊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깜짝 놀랐다. 자신은 노래 하나 못 외우는 사람이기에.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의 한가운데 서있는 요즘,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보던 때 보다도 좋은 영화를 가려내는 게 어렵다. 너무 많은 영화들 사이, 무엇을 봐야 좋을지 몰라 시작조차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빠르게 찍어내는 영상물들 가운데 옥석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제작한 영화들 중에는 주로 자연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최첨단 장비는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심해나 극단의 추위에서도 작동하며 몰랐던 지구 생명체와 생태계에 대한 경이로움을 일깨운다. 그리고 옛 영화 중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빛 바래지 않은 훌륭한 이야기로 화면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영화 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이다.





ps. 글을 읽으신 독자님들 중, 추천해주시고 싶은 영화나, 자신의 인생 영화가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추천해 주시는 좋은 영화도 보고 싶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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