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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y 01. 2024

나의 사랑, 나의 가족

나를 빚어낸 사람들


나는 사랑 빼면 시체다. 글을 쓸 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맺는다.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이 생겨도, 비극적인 사건이 눈앞에 닥쳐도, 그 순간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하다 결국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후회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 사실 늘 통하는 전략은 아니기에 그렇게 노력하려 다분히 애쓴다. 다듬지 않은 나의 마음은 한없이 좁고, 계산적이며, 화도 많지만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인간의 길을 걷기 위해 엄마가 중심이 된 가정교육과, 대학 진학 이후 고등교육으로 모난 성격은 조금은 둥그렇게 빚어지고 있다.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은, 나의 엄마와, 나의 외할머니로부터 받았다. 외할머니는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고추를 팔며 4남매의 생계를 책임졌다. 임동 근처의 장에 고추를 이고, 지고 다니며 하루 종일 굶었던 그녀는 집에 돌아오는 저녁엔 늘 양손 가득 장을 봐와 음식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예쁘고 감사한 것을 찾는 그녀의 눈에 자식들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희망이고 더 할나위 없는 보석이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씩씩하던  외할머니는 사랑받는 자녀였다. 외할머니의 엄마는 자신의 딸과 함께 살고 싶다며 임동까지 오셔서 노년을 보내셨다. 기억 속엔 없지만 나와 외증조할머니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을 보며 그녀의 존재를 추억해 본다. 모계로 전해 내려오는 사랑 덕에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껴주는 이들과 주변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사랑을 나눠주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외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제목의 브런치 북을 써내기도 했고, 올여름에는 그를 각색하여 독립출판물로 제작할 계획이다.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너른 마음을 알려준 외할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외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여전히 슬퍼하는 엄마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반면 나의 독선적인 면은 부계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 분명하다. 나의 친할머니는 못됐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다. 모든 면에서 인색한 할머니는 내가 대학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 함께 살면서 용돈 한 번 주신적이 없었다. 전쟁통에 엄마를 잃고, 척박한 땅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했던 할머니는 지독할 만큼 인색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작고 깡마른 소녀는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아껴야 잘 산다며 화장실에서 쉬를 하고 있어도 불을 ‘탁’ 꺼 버리고, 세수를 할 때도 대야에 잘박할 만큼 물이 차면 물을 ‘톡’ 꺼버렸다. 뭘 만지면 손을 ‘착’하고 때렸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엄마에게는 살림을 못 산다며 늘 잔소리를 해댔다. 동네에서도 다른 할머니들과 싸우고 시비 붙는 할머니로 소문이 나 있다. 자그만데 힘만은 거구인 나보다 몇 배는 센 그녀는 나와 엄마, 두 동생들 모두의 적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닮은 아빠 역시 아버지로서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 아빠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못된 엄마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부모로서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상을 받아오거나 시험 성적이 좋으면 칭찬을 했고, 고단한 토목현장의 일과를 마치면 술을 걸치고 와 우리를 괴롭히기나 했다. 기분파인 아빠는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방귀를 뿍뿍 뀌어대고, 반찬투정을 했으며, 집안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가장이면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고, 그런 아빠를 보며 배운 나는 중학교 때까지 엄마, 아빠 없는 집에서 동생들에게 대장질을 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두 살, 일곱 살의 나이차가 나는 동생들은 내가 시킨 심부름을 거부하고 나선, 나에게 맞을까 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혹시 문이 열릴까 문고리를 부여잡고 오들오들 떨었다.


서로 너무 다른 문화를 가진 두 가정에서 자란 엄마와 아빠가 사랑에 빠져 태어난 나는 어떤 면에선 아빠와 할머니를, 어떤 면에서 엄마와 외할머니를 너무 많이 닮았다. 대부분 안 좋은 면은 부계에서, 좋은 면은 모계에서 온 것 같지만 내가 가진 모든 특성은 잘 살아 보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윗세대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딸 셋 뿐인 종가의 큰딸이라는 타이틀은 아들 없는 대신 뭐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었다. 내가 잘해야 동생들도 잘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나를 일찍 철들게 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가난한 집에 시집온 엄마는 어떻게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에 시어머니의 폭언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우리를 키워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늘 고생하고 구박받는 엄마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동생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은 아빠와 너무 닮아 있었는데,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기에 유교라는 틀 아래서 배운 아버지 노릇인 ‘가부장’적 행동을 선택했고, 나 역시 동생들을 위하고 사랑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들을 휘어잡아 내 힘의 우위를 보여주려 소리를 버럭 질렀다. 19년간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내가 집을 떠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새롭게 알게 된 후에야, 서로 달라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모계와 부계, 두 가정의 문화가 드디어 온전한 나를 만드는데 퍼즐처럼 맞물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은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사람에게는 개개인의 특성이 존재하고 인간으로서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둘째, 개인의 특성은 유전적 영향도 있지만,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특히 유년기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는 방식이 성격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셋째,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부터 부단히 노력해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작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동생들은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내가 함부로 대해야 하는 이들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지난날의 폭압과 독재에 대해 사과했다. 왜 친할머니와 아빠가 인색하고 사랑에 서툴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이해하며 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에 화와 직면했을 때, 나는 내 모습을 외할머니처럼 만들기 위해 마주한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나름의 깨달음으로 내 가족을 마주하니 어린 시절 철든 척하며 모든 것을 아는 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내가 부단히 노력했고, 내가 잘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건대 엄마, 아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 준 것은 물론, 대학 학비도 학자금 대출 없이 다 대주셨으니, 나는 그냥 내 할 것 만 하면 되었을 뿐 인생의 역경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세상을 바람과 파도를 대신 맞아가며 큰 고생 없이 내 갈길을 갈 수 있게 보이지 않는 방패를 내 앞에 대어주고 있었다.

아껴 쓰라 늘 잔소리했던 친할머니 덕에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내가 발디디고 있는 사랑하는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에너지 자원과 물자를 아끼는 것이 습관화될 수 있었다. 92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기운이 넘치고 정정한 할머니는 꾸준한 운동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독립적이고 자립심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예였고, 그녀를 싫어함과 동시에 일부분을 보고 배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해내려는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미화되었을지 모르는 외할머니와의 추억 속에서도 나는 감사할 거리를 발견한다. 통통해도, 숙제를 안 해도, 동생과 싸워도 그녀에게 한결같이 예쁜 손녀였던 나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 그녀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의 싹을 틔워가며 나 역시 내가 늙었을 때, 나와 어딘가 모르게 닮은 어린아이와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전해 주고 싶다. 나의 외할머니 같은 외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은 그녀로 부터 왔고, 그녀를 향해 있다.






오늘의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의 정석으로 보인다. 언젠가 막내 동생이 찍은 엄마, 아빠의 동영상을 편집해 인스타그램 릴스로 올렸는데, 666만 조회수에 15만 4천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동생이 몰래 시골집에 내려가 숨어 있다가,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는 몰래카메라였는데, 고맙게도 댓글은 하나 같이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보기 좋다는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대학에 진학 한 이후, 아빠에게는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지 지속적인 잔소리로 주입한 결과, 아빠는 예순이 넘어서야 자신의 건강을 챙기며 술을 끊고, 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표현할 줄 아는 경상도 아저씨가 되었다. 엄마는 원래 흠잡을 데 없는 가정의 수호자다. 다만 자신의 업무인 가게 운영에 너무 애착을 가진 나머지 휴식이라는 중요한 삶의 일부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사랑과 감성이 지나쳐 눈물로 폭발해 버리는 엄마에게 조금은 쉬어도 된다고, 언제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사랑꾼으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기 위해 엄마가 조금은 여유를 내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두 동생들은 미국에 있는 나를 대신해 엄마, 아빠를 돌봐주는 든든한 존재들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다 해가며 살아가는 동생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우리는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공유하며 조금씩 달라져 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다. 이제는 각자의 짝꿍들 까지 생겨, 함께 모이면 여섯 명이 되는 거대한 그룹이 되는데, 엄마, 아빠는 우리 모두가 같이 있으면 그렇게 좋아라 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빚은 가족을 생각하며 나는 내가 빚어야 할 또 다른 가족이 있음을 떠올린다. 남편과 나로 구성된 ’ 나의 가족‘이다.

일전에 남편이 자신의 가족은 자신의 형제와 엄마라고 하며 우리는 그냥 부부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우리가 부부이자 새로운 가족이라 말했다. 아이 존재 유무와는 상관없이 나와 남편은 각자의 가족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가풍을 만들게 된 독립된 가정이니 말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이어진 시댁 역시 큰 의미에서 가족이겠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가정에서 분리된 성인이기에 우리 둘의 가정을 새롭게 빚어야 한다.

남편이 어떤 엄마와, 아버지, 어떤 형제로 지어졌는지 알게 되면서 나는 나의 친할머니와 아빠를 떠올렸다. 그가 겪어 온 가난, 미혼모의 자녀이자 이민자로서 헤쳐나가야 했던 편견, 부족한 배움 탓에 상처를 준 엄마의 무지. 남편이 그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서 자라난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여전히 나의 친할머니를 온전히 마음으로 품을 수 없듯, 시어머니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 나름 헤쳐 나온 삶의 무게를 인정하고, 그녀와 그녀의 생으로부터 빚어진 나의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받아온 사랑으로 충분히 감쌀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미 친할머니라는 백신이 있었기에, 어렵게 살아온 세월이 사람을 가끔은 모나고 이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외할머니라는 보약이 있었기에, 가시 속에서도 장미가 피고, 진흙 속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모진 환경에서도 예쁘고 감사한 부분이 있음을 안다. 그들 덕분에 이해하기 힘든 시어머니가 힘든 삶 속에서도 내 남편을 낳아 길러줘서 감사할 수 있다.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가족이란 세계에서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잠시라도 견딜 수 없을지 모른다. 대분의 가족은 주어진다. 세상에 내던져진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존재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이후에 세상에 뒤따온 동생들도 내가 선택한 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유일한 가족은 나의 배우자뿐.

행운이 따르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선택한 가족을 통해 사랑을 듬뿍 주고 또 듬뿍 받을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주어진 가족에게서 사람이 어떻게 빚어지는지 배우고,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다시 돌려받고 있다.

사랑 빼면 시체인 나는 오늘의 글도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결국 사랑으로 빚어진 우리는 사랑하며 살고, 사랑을 다 내려주고 소진한 후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사랑받을 테니 말이다.





릴스 영상 링크

https://www.instagram.com/reel/C0FRZSSvDvL/?igsh=MWQ1ZGUxMzBk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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