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태기 어떻게 극복하나요?
요즘처럼 밥 하기 싫은 때가 없다. 내가 한 음식 맛이 거기서 거기인 데다 만사가 귀찮아져 더 이상 뭔가를 만드는 게 힘겹다. 주부의 삶에도 번 아웃이 오는가? 새로운 식재료나 조리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즐거움이 아닌 일로 다가온다. 나와 남편의 입에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니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하고 싶은데, 계속되는 그저 그런 요리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남편까지… 밥을 하는데 신이 나지 않는다. 야채를 다듬고, 조리하는데 맞게 자르는데 나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 정돈되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밥 하기 싫을 때 찾는 건 역시 빵이다. 집에서 떨어진 밥맛은 식당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우리 부부가 찾는 곳은 맛있는 빵을 파는 빵집이다. 어김없이 밥 하기 싫어진 어느 날,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일전에 소개한 샌프란시스코 3대 빵집 중 한 곳인 비파티세리(b. patisserie)의 입구에 줄을 섰다. 프랑스말로 빵집인 ‘파티세리’에서는 크로와상과 퀸아망 같은 프랑스 페스츄리들을 주로 취급한다. 늘 줄을 서야 하는 인기 있는 빵집이지만 평일 오전에 가서 그런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입구에 줄을 서면 친절한 점원이 한 명씩 손님을 불러들여 주문을 받는다. 진열장에 놓인 맛있는 빵들 말고도 계산대로 가면 전시되진 않았지만 바게트 오픈 샌드위치 메뉴판도 놓여있다. 나는 진열대 속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퀸아망, 아몬드 크로와상 하나씩과 메뉴판에서 처음 보는 메뉴인 레몬 아보카도 리코타치즈 바게트를 시켰다. 달달한 빵들을 라테와 함께 먹으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먹는 것 하나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퀸 아망은 바사삭 거리는 겉 표면에 층층이 쌓인 페스큐리가 보드라운 살결을 드러낸다. 아몬드 크로와상은 달큼한 아몬드 필링이 채워져 있는데, 남편은 단 네 번 만에 빵을 해치운다.
곧이어 나온 바게트는 메뉴판에 적혀 있는 식재료가 정직하게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 위로 으깬 아보카도가 한 층 깔려 있고, 그 위에 하얀 리코타 치즈가 깔려 있었다. 치즈 위로는 애플민트와 딜이 군데군데 뿌려져 있고 올리브유가 휘휘 둘러져 있었다. 한 입 물자 상큼한 레몬향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짭짤한 소금 맛도 느껴졌다.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이 간단한 빵 한 조각이 14달러였기에 다음엔 집에서 해 먹고 다른 메뉴를 시켜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전업 주부가 되어 보니 왜 엄마들이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지 알겠다. 꽤 오래 지속되어 온 ‘밥 하기 싫어’ 증상은 3주 전부터 발현되었는데,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모르겠다. 빵도 맛있지만 이제 나는 집밥 보다도 한국에서 회사 다니며, 회사 식당에서 차려주던 밥이 그립다. 영양사 선생님이 직업정신을 담아 설계한 영양소 고루 담긴 식단. 무엇보다도 내가 하지 않은 데다, 설거지까지 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메뉴가 바뀌니, 당시 식당 밥을 먹을 때도 참 감사했는데, 요즘은 정말 그 밥이 그립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는데, 먹고 싶은 것도, 만들고 싶은 것도 없는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편 도시락은 뭘 싸줘야 하는지. 너무 무기력 한 날에는 글쓰기마저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구멍이 나 가라앉는 보트처럼 물속으로 잠긴다. 오늘 안개가 잔뜩 끼어 그런가 보다 하며 날씨 탓을 해본다. 샌프란에도 먹구름 끼는 날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