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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y 20. 2024

야심한 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주말 밤에 어딜 간다는 거야

"Okay, I have something fun scheduled for Sunday 9:50pm"

(일요일 밤 9:50시에 내가 재밌는거 예약했어)


일요일 밤의 샌프란시스코는 조용하다. 술집이든 가게든 일요일 저녁에는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편이기 때문일까. 거리에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다. 집에서 조용히 주말 저녁을 보내며 월요일을 준비하는 시간.


그래서 남편이 일요일 밤에 뭐가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와아-" 하고 신이났다기 보다는 "엥-?" 하고 시니컬한 반응이 나올 수 밖에. 그렇게 늦은 저녁이면 무슨 공연도 아니고, 가게도 아니고. 스탠딩 코미디 공연은 그렇게 늦은 시간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요일은 정말 드물다. 대체 뭐지?


남편이 워낙 싱글벙글하고, 안 가르쳐줄 거라고 해서 궁금했지만 토요일 까지도 캐묻지 않았다. 근데 막상 일요일 저녁이 되어가자 질문을 잔뜩 할 수 밖에 없어졌다.

"거리가 멀어? 어떻게 갈 거야?"

"실외야?"

"오래 서 있어야 돼?"

" formal(예의와 형식을 요하는) 이벤트야?"


샌프란시스코의 밤은 춥다. 실외면 따뜻하게 입어야 하고, 오래 걸어다닐 거면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하고, 정장 이벤트면 또 그에 맞게 형식을 차려 옷을 입어야 한다. 거리에 따라 걸어갈 수도, 우버를 탈 수도 있고 언제쯤까지 준비해야하는 지도 알 수 있으므로.


내가 끝없이 질문을 하자 남편은 결국 "그냥 말해줄까?" 하더니 실토를 해 버렸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 가서 공연을 본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공연은 샌프란시스코 시청 내 곳 곳에서 관람할 수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었다. 공연은 무료였는데 남편은 운이 좋게도 마지막 남은 티켓을 겟 할 수 있었단다.


공연은 발레와 현대무용을 섞은 듯한 형식에, 시청 내부를 이용한 빔프로젝트, 조명, 조형물, 라이브 4중주를 이용한 종합예술. 자, 천천히 걸으며 함께 감상하시죠. 




2층으로가면 시점이 변화한다.

중간중간에 행위예술(?) 형식의 셋업도 있다.

4중주가 음악을 연주하는데, 샌프란시스코 메인 홀을 따라 소리가 울려퍼지며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다가, 공중에서 무언가가 내려온다. 초반 사진들에서 발견하셨은지 모르겠지만, 저 무용수 두 분은 내내 공중에서 글래스 선반 같이 생긴 것에 누워서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장치를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건물의 내부를 이용한 비주얼 아트. 아, 아름답다.

곳곳에서 동시에 공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곳 저곳을 구경하느라 바쁘다. 양쪽 난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




레파토리가 끝나면 또 한 번 반복한다. 내용이 반복되지만 계속 건물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시야와 비주얼이 바뀌므로 다시 한 번 새롭다.


중앙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시장 런던 브리드의 집무실.


오밤중에 캄캄한 시청을 돌아다니자니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무섭다거나 오싹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시청을 왔을 때는 남편과 시청결혼식을 하던 때였다. 벌써- 7년 전이다. 사진사를 고용해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 이런 아름다운 창문을 배경으로 한 한 장으로, 우리집 거실에도 걸려있고 결혼식 스냅으로 해서 청첩장에도 썼다. 아이고 벌써 7년이나 되었나, 그 날을 생각하면 높은 하이힐에 발이 너무 아팠던 것과,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지쳤던 것이 주로 떠오르니 나는 워낙 로멘틱한 것에는 젬병이인 듯 하다. 



이번에는 3층에서 관람했더니 바로 눈앞에 있다. 이 라운드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마쳤다. 이 날이 마지막 이었는지 모두가 서로 정답게 인사하고 박수치고 행복을 나눴다.




공중에 떠 있던 분들도 무사히 내려오셨고, 우리도 아쉽지만 집에 갈 시간. 


세월에 닳은 계단이 뭔가 정겹다




시청결혼식 이후에 처음 다시 와 본 시청이 (이혼 신고가 아니라ㅋㅋ) 아름다운 예술공연 덕분이라니 좋다. 공연은 예약만 하면 누구에게나 무료였다. 시민을 위해 기꺼이 시청을 내어 신선한 무료 공연을 기획한 관계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아름답다. 다른 카운티나 도시의 시청보다 혼인신고/결혼식 비용이 조금 더 비싸지만, 아름다운 건물 때문에 여기까지 원정을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관광객이시라면 이 아름다운 시청에 투어를 신청해서 누구나 해설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고, 특히나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계단 꼭대기에 커다란 크리스마스도 설치하는데 그게 매우 장관이니 방문 기간이 맞으시면 보시길 추천한다. 


참고: 시청 주변은 노숙자가 많은 '텐더로인' 지역과 살짝 맞닿아 있기 때문에, 노숙자를 종종 볼 수 있다. 로컬은 어느 블록을 피해야 하는지 잘 알지만, 관광객은 헤매다가 우범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멀리 걷지 않는 게 좋다. 물론 어딜 조심해야 하는 지 아는 로컬과 함께 다니는게 가장 좋고. 




신비하고 로맨틱한 주말 저녁을 선사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며

(춤추는 무용수 우리 남편 아님주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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