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양희 Jun 02. 2024

이정후 없는 샌프란 자이언츠

야구 좋아하는 사람만 경기 보러 가세요

동생 결혼식 참석으로 한국에 갔던 나는 엄마, 아빠에게 진한 약속을 받아냈었다. 이번엔 미국에 함께 가겠다고. 내가 미국에 온 지 1년 반이나 되었으니 한 번쯤은 딸내미가 사는 곳에 와보라는 내의 간곡한 부탁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약속도 무참히 짓밟혔다. 아빠가 공사를 땄단다. 경기가 안 좋아 한동안 놀고 있었던 아빠에게 4개월 만에 들어온 일이었다. 이번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번에도 계약을 따는 것이 힘들 수 있으니 미국에 함께 갈 수 없단다. 올해 상반기를 경제적 소득 없이 속절없이 흘려보낸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젊지 만은 않은 자신들을 뒤로한 채, 여행 떠나는 걸 사치이자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생각하는 그의 생각에 새로운 싹을 심어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그러면 엄마 만이라도 데려가겠다 했더니, 아빠는 엄마가 자신(아빠)이 없으면 좋은 것 봐도 본인 생각이 나서 마음껏 즐길 수 없을 거라는 억측을 이유로 반대했다.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봤을 때, 엄마는 혼자라도 우리와 함께 오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아빠의 억지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나중에 아빠랑 같이 갈게 큰 딸.’ 엄마는 그 말을 남긴 채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했다. 아빠는 왜 그런 걸까?


남편과 나는 이미 엄마, 아빠가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함께 할 액티비티를 위해 야구표를 끊어놓았다. 올 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천3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한 이정후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봐오던 사람이었다. 야구를 좋아한다기보다 우리나라 선수가 넓은 세계 무대에서 성취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나와 남편, 엄마는 야구에 관심이 크게 없지만 아빠를 위해 300불짜리 티켓까지 끊었는데, 아빠의 돌연 여행 취소로 티켓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티켓은 취소나 환불이 되지 않아 되팔기 밖에 할 수 없었는데 헐값이 아니면 사는 사람도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티켓을 사고 난 직후, 이정후 선수는 부상을 당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당일, 나와 남편은 시동생과, 시동생의 여자친구를 불러냈다. 이정후선수가 없어도, 이미 산 표를 그냥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야구경기가 치러질 오라클 파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시동생네 학교 근처에 차를 세워두었다. 예전에는 공장지대였다던 UCSF의 의과대학 부지는 연구시설들과 새로운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오라클 파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는데, 시간이 남았던 우리는 중간에 피제리아에 들러 이탈리아 피자 두 판을 사들고 경기장에 근처에 다 달았다. 이미 경기 전 행사가 진행되었고, 아시아 어느 나라의 전통 복장을 입은 것 같은 여성이 미국 국가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전광판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우리는 늦을세라 헐레벌떡 경기장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기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유독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라 파카를 입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네 명이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경기는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대 필라델피아의 경기였다. 때마침 우리 바로 옆 좌석에는 하드코어 필리 팬이 앉아있었는데, 연신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LET'S GO, LET'S GO, LET'S GO! 를 외쳤다. 나도 질세라 샌프란 시스코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렛츠고를 외쳤지만, 우리의 응원은 선수들에게 가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야구장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 아닐까. 우리는 가져온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야구규칙을 전혀 모르는 시동생의 여자친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줬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한국의 야구장처럼 각 선수들마다 있는 지정 응원가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활동도 없었다. 337 박수 같은 단순한 응원이 전부인 야구장의 부흥을 위해서는 한국식 응원의 도입이 절실했다.  

경기내용은 7회까지 0대 0. 어느 팀도 점수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살을 에는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가 보는 게 어때?"

누구 하나가 먼저 이 말을 하길 기다렸다는 것 마냥 우리 넷은 일어나 빠르게 자리를 떴다. 경기장을 나가기에 앞서, 바다와 접해있는 경기장의 모습을 보러 1루 쪽 경기장 제일 끝 쪽에 가보았다. 바닷가에는 혹시 넘어올 홈런볼을 건지려는 사람들이 카누를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래도 샌프란 살면서 야구장 한번 정도는 와봐야 하지 않겠어? 재미없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 위로하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20분을 걸어 UCSF로 향했다. 차로 향하던 중에 Chase 경기장(샌프란시스코 농구 경기장)을 지나며 말했다.  

"나중에는 워리어스 경기를 보러 가보자."

"워리어스 경기는 제일 구석자리가 500불이야, 알지?"

남편이 말했다.

"그럼 돈을 좀 더 벌어서 가봐야겠다."

크게 관심 없는 농구경기에다 쏟을 만한 돈은 아니었기에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아직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지 않은 경험들이 많음을 새삼 느끼며, 추운 바람을 뚫고 차로 향했다. 그리고 경험을 위해 돈을 쓸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 야구경기는 경험 보다도 야구를 좋아하는 이에게 더 즐거운 것일 테니 말이다. 나에겐 미술관이나 공연 예술을 보는게 더 즐거운 일이다.


아빠에게 일러둬야겠다. 다음에 올 땐 야구경기 관람은 일정에 없을 거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음식의 미국침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