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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25. 2024

자전거 타고 금문교 건너기

낭만과 고됨, 그 사이

한 때 엄청난 운동량을 자랑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60km씩 달렸다. 주로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고, 나의 체력에 감탄한 직장의 바이크 모임 아재들의 강권에 의해서였다. 총장님과 교수님들을 포함한 그 모임에서 나는 유일한 20대였고, 유일한 여자였다. 나의 체력과 싹싹함, 빼지 않는 성격 때문에 나의 사회생활이 꽤나 원활했을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하다 해도, 직장 내에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간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나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그 속에서 주어진 일만 잘하는 젊은 여성보다는 이런저런 모임에 끼는 내가 조금은 튀는 모양새였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신체적으로 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험을 즐겼고 아재들 덕분에 섬진강 자전거 길 110km 중 2/3을 내리 달렸고, 대전과 옥천을 잇는 자전거 길을 왕복했으니 말이다. 평균시속 18km로 자전거를 타고나면 ‘이 먼 거리를 내 두 발로 달리다니.’라는 뿌듯함과 단단한 대퇴근을 만든 것 같은 성취감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자동차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자연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는 것 역시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거리 자전거를 타고나면 엄청난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일주일간 이어지는 엉덩이 뼈의 통증이다. 평소라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할 엉덩이 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아무리 두꺼운 바이크 패드를 착용해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남편은 우리의 새로운 취미로 E-bike를 제안했다. 전기자전거라니. 사실 그 물건의 용도에 대해 나는 많은 의구심이 든다. 체력을 증진시키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없고, 멀리 가기 위한 이동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없는 그 어중간함. 기계도, 전자제품도 아닌 그 어중간함 속에서 고장 나면 고치기도 까다로운 그 물건은 나의 필요나 욕구 중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한 번 꽂히면 그게 옳든 그르든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야 하는 남편에게 설득은 힘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4,000불짜리 자전거 하나와 자신을 위한 2,300불짜리 자전거를 하나 샀다. 그 돈을 모두 줬다면 내가 절대 못 사게 할 것을 알기에 그는 0.5마일을 뛴 중고로 각 1,700불, 900불의 새것 같은 중고 자전거를 산 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돈이면 중고차를 하나 더 살 수도 있다. 정말로 말이다. 자전거를 차에 연결해 다닐 거치대와 각자의 헬멧까지 모든 구매를 마치고 그는 다음날 휴가까지 썼다. 금문교를 건너 티브론까지 가기 위해서다.



휴가까지 쓴 그는 크리시필드에 차를 세우고 우리의 자전거를 보며 감탄했다. 그날은 유난히 안개가 짙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로드나 하이브리드, 산악자전거만 탄 나에게 바구니라도 달려야 할 것 같은 운동을 위해는 쥐약인 구조의 자전거는 무릎을 쫙쫙 펼 수 없어 힘이 실리지 않았고 무겁기는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표정으로만 나의 불만을 표현했을 뿐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별말 없이 자전거에 올라탔다. 우리는 금문교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열심히 굴려도 가지 않은 자전거에 파워를 조작해 보았다. 그러자 스쿠터의 엔진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앞바퀴가 들리듯 쌩하고 속도가 붙었다. ‘오, 이러다 골로 가겠는데?’ 서서히 속도가 붙는 기계식 장치가 아니었기에 속력은 부지불식간에 붙었고 나는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지극히 아날로그적 인간인 나에게 전기 자전거는 너무 ‘전자식‘이었다. 오롯이 내 힘으로 나아가는 자전거가 그리웠다. ’으아앙‘하고 소리지르자 남편은 내가 좋아서 외치는 소리인 줄 알고 즐거워했다.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은 그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크리시 필드를 넘어서자 바로 언덕이 나타났다. 금문교를 타기 전 많은 이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오르는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E-bike는 진가를 발휘했다. 헛 발을 굴리고 있는 많은 이들의 자전거를 쌩 하고 지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업힐을 만나면 엉덩이를 쳐들고 불타는 허벅지의 근육을 느끼며 균형을 잡으려 애쓸 일이었지만 바이크의 파워 버튼을 누르고 페달 몇 번 밟으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그때만큼은 남들을 제치고 올라가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드디어 금문교에 올랐다. 안개가 끼었지만 여전히 운치 있는 그곳 위에 서니 어찌나 강하게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들을 피해 다니느라 라이딩을 하며 금문교의 풍경을 즐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전거를 타고 금문교를 건너는 건 관광지에서 한 번의 체험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라이드를 좋아하는 바이커가 좋아할 코스는 아니었다. 어렵게 금문교를 건넌 우리는 그제야 약간은 속력을 낼 수 있는 차로 겸 자전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소살리토로 향했다. 소살리토는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 도시들과 조금은 닮아있는데 그보단 조금 더 성기고 부티가 난다는 점이 큰 차이 일거다. 소살리토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지고 쨍쨍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커피숍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고작 30분을 달렸을 뿐인데 벌써 진이 빠졌다. 레모네이드와 과일 스무디로 힘을 낸 우리는 페달을 굴려 리처슨 베이를 돌았다. 그곳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흡사 스위스 같은 풍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차와 함께 공유하는 길이 아닌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여길 자전거로 오는 건 처음이야.”

샌프란시스코에서 20년을 넘게 산 남편이 말했다.

“여보는 안 가본 데가 너무 많아. 이제 나랑 같이 열심히 다니자.”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자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런 뉘앙스로 들렸을 것 같았지만 굳이 더 설명하진 않았다.

목적지인 티브론 선착장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을 때, 차로로 자전거를 몰아야 하는 지점에 다 달았다. 거대한 화물차를 피하기 위해 인도로 잠시 방향을 틀다 살짝이 넘어졌다. 균형을 잘 잡았다면 괜찮았겠지만 부쩍 줄어든 속도에 무거운 자전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엉덩이와 허벅지로 착륙했다.

“God damm heavy bike!! (망할 놈의 무거운 자전거!!)”

정말 절로 입에서 영어 욕이 나왔다. 남편과 있을 때, 영어를 쓰지 않는 데다가 욕도 쓰지 않는 나에게 욕으로 영어가 나오다니 화가 좀 많이 났나 보다.

남편은 ‘갓 댐 해비 바이크’라면서  내 말을 따라 하며 낄낄 웃었다.

아주 적절한 낙법을 사용했기에 다치지 않았지만 괜찮냐고 물어야 할 남편이 웃으니 조금은 화가 나고 욕을 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머쓱했다.


티브론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다. 소살리토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면 티브론은 그보다 더 아늑하면서 잔잔하다. 예전에 티브론 도서관에 간 적이 있는데, 도서관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차분하고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는 더 잊히지 않았다. 연중 따뜻한 기후와 잔잔한 만을 둘러싼 그곳은 진짜배기 부자들의 은퇴장소다. 티브론에 다다르자 자전거 여행의 끝이 보여서인지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멋진 풍경을 즐기기 위해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준비해 간 코코넛 워터를 마시며 잔잔한 바다를 바라봤다.



티브론에서 샌프란시스코 까지는 페리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사전 준비를 하지 않은 우리는 배가 떠나기 2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애플페이로 선내에서 표 구매가 가능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갑판으로 나가 풍경을 즐기던 남편은 배가 엔젤아일랜드에 들렀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선 다시 자전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누가 자전거를 훔쳐가면 안 된다나. 소유가 주는 불안함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샌프란시스코처럼 남의 차 창문을 깨 물건을 강취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전기 자전거를 산 그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가 비싸서 그것만 전문으로 털어가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결국 이 애물단지는 누가 훔쳐갈까 봐 순간을 즐기는 것에도 제약을 주는 물건이었다.



바다를 건너 다시 페달을 밟고 차를 세워 둔 크리시 필드에 도착해 자전거를 실었다. 모험이라고 하기엔 편리하고, 낭만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놓친 게 많은 자전거 라이딩이 끝나고 나는 남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이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아. 값 떨어지기 전에 어서 팔아버려. 더는 말 안 할게. 이건 운동기구도 교통수단도 될 수 없는 애물단지야.”

남편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 다음날 또 다른 자전거 용품이 택배로 도착했다.

이게 실수란걸 깨닫기 위해 남편에겐 얼마의 시간과 얼마의 돈이 낭비되어야 할까? 진정한 라이딩을 해 보지 못한 이에게 자전거 전용도로의 중요성에 대해 백날 이야기 해봤자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한국 자연의 경관과 자전거를 위한 도로 시스템을 우습게 볼 뿐이었다. 이럴 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메리칸인 것 같아 화딱지가 난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했던 이 모든 경험들이 그에겐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짠함을 느꼈다. 그에게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거다. 직장과 집만을 반복하는 그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새로운 취미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취미 부자인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데 큰 시간을 할애하지만 남편은 무얼 해야 일이 아닌 일상을 채울 수 있을까.



취미가 아닌 한 번의 경험이라면 금문교 자전거 라이딩은 해 볼만하다. 물론 자전거를 빌리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내야 하지만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여행을 온 사람에게는 낭만이 될 수 있는 그 경험이 나에겐 반 강제적인 취미가 될까 무섭다. 낭만과 고됨 그 사이에 있는 전기 자전거 라이딩을 과연 나는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의 바람대로 애물단지를 처분할 수 있을까.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살짝꿍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넙적 다리를 괜히 한 번 더 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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