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반찬과 함께 돌아온 힝구
힝구가 돌아왔다.
캐리어 가득 주문한 생필품과 엄마의 반찬을 담아 녹초가 된 얼굴로 돌아왔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휴스턴으로 오는 비행기까지 타야 하니 고된 여정에 얼굴이 더 홀쭉해진 것 같다. 사랑의 메신저는 짐꾼으로써의 임무를 잘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보고 느낀 가족의 모습을 입에서 귀로 옮겨주었다.
“수빤이는 머리도 길고, 예뻐졌어. 우리가 사간 말린 망고는 인기가 많았어. 장모님은 늘 편안하게 해 주시지. 장인어른이랑 셋이 머리 자르러 갔다 왔어. 성창이가 집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미주알고주알, 한국의 소식을 전해주니 눈앞에 그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싸준 반찬을 꺼내 먹었다. 외할머니 밭에서 딴 깻잎으로 당신이 직접 만드신 무침과, 엄마가 페이스톡으로 계속 맛있게 됐다며 자랑했던 멸치와 콩자반, 무말랭이, 엄마 친구가 담아주신 김치를 정성스레 흰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날그날 먹을 것을 한 그릇 음식으로 뚝딱 해 먹던 터라 두고두고 먹는 밑반찬이 순간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밥 한 숟갈에 깻잎을 얹어 먹으니 있었던 맛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며 눈물이 뚝 떨어졌다. 오래오래 아껴먹어야지 했다가 그러면 상해서 다 버리게 될까 봐 부지런히 먹기로 다짐했다.
사랑의 메신저가 가져온 꾸러미 안에는 내가 주문한 책들도 들어있었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과 읽었지만 또 읽고 싶은 책들 몇 권이었다. 그중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Womankind를 들고 햇살 잘 드는 수영장 옆에 나가 앉았다. 무심코 책을 펼치자 사진 하나가 끼어져 있는 페이지가 펼쳐졌다. 사진에는 아직 돌이 채 되지 않은 나와, 그런 나를 안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9살이나 어리다. 장미꽃 뒤에 하얀 옷을 입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엄마와 작고 동그란 내가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엄마는 대신 기억해 준다.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었는지 그래서 엄마가 잠 못 들고 지새운 밤이 얼마나 많은지. 못 사는 집에 홀 시어머니가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키느라 힘들었을 때, 나까지 태어나면서 엄마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해 본다. 스물일곱. 갑작스레 주어진 막막함을 헤쳐 나가기 무척 어린 나이였을 텐데, 사진 속 엄마는 나를 안고 미소 짓고 있다. 그 사진을 나도 품에 꼭 안아본다. 다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엄마보다 9살 많으니깐. 나는 엄마 딸이니깐. 많은 시간이 주어진 백수의 답답하고 막막했던 가슴에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