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할머니와 어린 엄마

by 한양희

미국에 시집이라는 걸 와서 가만히 앉아 있는 나는 백수다. 여행 허가증, 노동 허가증도 발급되지 않은 상태라 미국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넓은 땅에 갇혀 소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 가며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과거의 기억을 꺼내다 되짚고 곱씹고 되뇐다. 그러다 보면 내 기억을 넘어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게 되는데 신기하게 많은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살아온 삶에서 아픔을 느끼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 그중에서도 엄마와 외할머니에 이입되어 그들의 삶을 살아보는 시간이 많다.


그녀들은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난 후 그곳에서 가정을 일구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살아가는 모진 세월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시험을 못 쳤다고 질질 울고, 취업이 안 된다고 세상 다 떠난 듯했던 나의 역경은 할머니의 인생 앞에서는 코딱지만도 못한 고뇌였다. 뇌졸중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꼬박 6개월 동안 간호해서 살려놓고, 사 남매를 먹고 재우기 위해 새벽 3시면 일어나 길을 나섰다. 걸어서 읍내에 있는 버스를 타고 진보 장으로 가서 고추를 100근씩 때다가 값을 매기고 물건을 팔았다. 장사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의 손에는 묵직한 비닐봉지 한가득 식재료가 담겨있었다.


“양현아, 명아, 양희야, 훈아.”


대문이 보이지도 않는 저쪽 골목서부터 할머니는 아이들의 이름 하나하나씩 불러가며 엄마가 왔음을 알렸다. 몸이 고달파도 애들만 생각하면 힘이 났다. 맛있는 걸 해다가 우리 새끼들에게 해 줄 생각을 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본인은 제대로 된 한 끼 챙겨 먹지 못했지만, 자식들에게는 늘 푸짐한 음식으로 사랑을 담뿍 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씩씩하고 인정스럽고 푸근한 할머니의 몸과 마음이 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 그립다.


엄마에게서 페이스 톡이 왔다. 엄마가 직접 건건 처음이었다.

“엄마 안농? 잘 있나?”

“사랑하는 큰딸, 안뇽? 잘 있지? 얼굴이 부어 보이네?”

“아 지금 팩 하고 있어.”

“그래 거기서도 그렇게 스스로 잘 관리해야 해.”

“응. 엄마는 지금 어디야?”

“엄마 지금 마트 왔어.”


그리고 이 울보 엄마는 또 눈물을 보인다. 엄마가 울면 나도 곧 따라 운다.


“왜 또 우는데?”

“글쎄, 그냥 눈물이 나네.”

“아이참.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나?”

“아니 그건 아니고, 엄마 오늘 저녁에 할머니 보러 가려고.”

엄마는 할머니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면서 삼 일 전에도 다녀왔지만 오늘 또 외갓집에 간다고 한다. 요즘 할머니는 전쟁이 났다고 하는가 하면,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한단다. 지지난 주, 동생들이 할머니한테 가서 페이스 톡을 했을 때만 해도 정신이 또렷했었는데, 사람이 곁에 없으면 이내 안 좋아지시나 보다.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를 시설에 모시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형제들 모두 여건이 안 돼서 할머니를 모실 수 없으니 더 나빠지면 시설에 가야 할 거라고.


할머니가 곧 떠날까 봐 겁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더 슬프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겠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닌 걸 알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정말 괴롭고 두려운 일이다. 앞으로 있을 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부디 헤어짐은 최대한 늦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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