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건 15년 전쯤의 일이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여 찾은 병원에서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이 병은 완전히 고칠 수 없이 그저 진행 속도를 낮출 수 있다고만 들었다. 난치병인 것이다. 이 신경퇴행성 질환은 지난 15년간 끊임없이 할머니를 괴롭히며 걷고 움직이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치매라는 친구까지 동반했다. 지금의 할머니는 치매로 온전했던 자신과 이별하는 중이다.
나는 이런 할머니의 상태를 비극이라 생각했다. 지난 세월, 병든 외할아버지와 4남매를 키워내기 위해 고추 장사를 하며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노년에 와서야 조금은 쉬어 볼까 했는데, 다리 수술, 허리수술을 마치고 나니 파킨슨병과 치매 등의 합병증이 왔으니 말이다. 이제 다 꼬부라져 버린 허리에 주춤주춤 걸음을 내딛는 우리 할머니. 그 흔한 해외여행조차 한 번 가지 못 한 할머니. 그녀가 하지 못한 것들이 나에게 기회가 되어 돌아왔는지 나는 너무 편안하고 평온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 그녀를 한 번 더 살피지 못하고 더 자주 찾아가지 못해 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음은 “미안함”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드는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은 변하게 된 책을 읽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는다]의 작가 김혜남 선생님이 쓴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다. 이 책도 10만 권이 넘게 팔려 최근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출간되었다. 김혜남 선생님은 정신분석 전문의인데, 43세의 나이로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이 책은 김혜남 선생님이 지난 22년 간 파킨슨병을 겪어오며 새로 깨닫게 된 삶의 자세들에 대한 글인데, 그간 몰랐던 파킨슨병의 증세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접하게 되면서 외할머니에게 가진 미안한 마음이 고마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파킨슨병의 증상은 손발이 떨리는 것부터 시작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누군가가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선 움직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병이 발병되고 나면 치매와 우울증 등 다른 신경퇴행성 질환들이 찾아오고, 발병 15년 후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 상태가 된다고 한다.
김혜남 선생님이 알려준 파킨슨병의 실체는 큰 충격이었다. 할머니의 덜덜 떨리는 손만이 파킨슨병의 증세라고 생각했는데, 걸음을 걷는 것조차 환자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나는 정말 너무 모르고 있었다.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를 사랑하고 위한다고 자부하던 나인데, 할머니가 가진 병의 증세조차 찾아보지 않는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나의 할머니는 움직임이 버거운 상황에서도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오면 예전 솜씨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푸짐한 요리를 선보이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채소를 키우기 위해 날마다 텃밭을 가꾸었다. 커다란 사랑의 힘으로 말이다.
책에서 배운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가짐은 감사함이다. 우리 할머니가 힘든 병을 이끌고서도 늘 ‘하하하’ 호탕하고 명랑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 것이, 치매로 정신이 왔다 갔다 해도, 가족들을 늘 기억해주고 있는 것이, 사람에게는 혼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며 집을 지켜주고 계시는 것이. 그 모두가 모두 감사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병을 이겨내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그런 힘을 주신 세상에도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 마지막 설 연휴. 미국에 있는 나를 제외한 우리 식구 모두가 외갓집을 찾았다. 그때는 치매증상이 심해져 밤이나 이른 새벽에도 엄마에게 전쟁이 났다고 전화한다던 할머니가,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는 아주 말끔하고 고와 보였다. 사람들이 집에 한가득 있으면 텅 빈 공간에서 보여 왔던 허깨비들이 더 이상 맥을 못 추고 할머니를 원래의 자신에게 돌려주나 보다.
“우리 손녀가 아주 예쁘네. 미국 물이 잘 맞는가 보다.”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 들려온다.
“맞아요 할머니. 저는 잘 있어요. 할머니는 정말 대단해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아프다고 무너졌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이렇게 걷고 화장실도 가고 너무 멋있어요. 고마워요.”
화면 너머로 쌍따봉을 날리며 크고 또박또박하게 이야기했다.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에, 할머니의 지금 모습과 열심히 살고자 한 그녀의 노력을 잊을 뻔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꺼져가지만 아직까지는 남아있는 그 온기에 집중하려 한다. 찾아갈 수 있는 외갓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직 할머니가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그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지금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거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할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멋진 할머니의 손녀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나를 이루는 4분의 1이 할머니로부터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할머니를 너무 사랑한다고 매일 밤 할머니의 꿈에 찾아가 말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