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한양희

한국의 출산율이 OECD 최저치라는 뉴스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0년 이후 감소세에 들어섰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하락했다.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다. 오늘날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은 2.1명인데, 현재 출산율이 0.78명이니, 5,000만의 대한민국 인구가 30년 뒤면 4,000만이 되어버릴 수치다. 국가는 새로운 출생을 필요로 하지만 실제로 자녀를 낳아야 하는 청년들은 출산과 육아를 꺼린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과 비용문제, 변화된 여성의 사회적 역할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내가 아는 딩크 선언 동료는 3명이었다. 몇몇 선배들은 외동아이를 키워보니 힘들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들어 더 이상 낳을 수 없겠다고 했었다. 지금쯤 나이면 주변에 결혼하고 임신한 친구들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결혼을 안 한 친구들도 많고, 아이가 없는 친구들도 많다. 점점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에서 나 또한 아이를 낳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프지 않고 훌륭하게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학업, 취업, 결혼 모두가 어려운 사회 속에서 망가져 가는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게다가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고생스러워 보였다. 입덧하는 내내 힘들어했고, 출산 자체는 상상도 안 되는 고통이었으며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한 동안 밤에 잠도 못 자고 사회생활도 단절되었다. 출산과 육아는 아이의 유년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크면서 동반하게 되는 많은 비용들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들 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교육비가 나가고, 결혼한다고 하면 혼수까지 해줘야 하나? 그 돈이면 우리 부부가 평생 여유롭게 여행도 하며 삶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면 출산과 육아는 망설일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아이가 소비재로써 삶에 들어온다면 절대로 정답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오답이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건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커다란 힘(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른네 살이 되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더 늦으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이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나이에도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의학 자료가 보여주는 수치로 내 나이는 이미 노산의 범주에 들어서있다. 엄마로서의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기에 앞서 갈팡질팡 하던 나는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외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된 나이에 나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어린 외손녀와 함께 걷는 상상을 한다. 내가 키운 야채들을 함께 딴 후 예쁜 애호박을 품에 안고 기저귀를 찬 궁뎅이를 흔들며 아장아장 걸을 손녀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생각만 해도 귀엽고 예뻐서 얼른 달려가 깨물어주고 싶다. 그런 미래의 외손녀를 위해 나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 조금 기다려 봐, 얼른 외할머니로 만들어줄게.” 아기를 낳겠다는 결심을 참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다. 건강하게 살면서, 나와 다르지만 나의 어느 구석을 닮은 어린 누군가를 돌보고, 그와 함께 유대감을 쌓는다는 건 꼭 경험해 보고 싶은 소중한 미래다. 내가 외할머니가 되고 싶듯, 엄마도 외할머니로 만들어주고 싶다. 내가 외할머니와 만든 사랑의 관계를 엄마도 맺을 수 있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내가 작년 읽은 책 중, 가장 사랑한 환경 관련 도서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다. 아이슬란드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쓴 이 책은 우리가 직면한 환경 관련 이슈들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전달하는 다른 환경 관련 서적들과 달리, 작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가 속한 지역 사회와 신화들이 오늘날의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덕에 책은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개인적이고 친밀한 ‘시간’의 관점을 더하여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마그나손과 그의 할머니, 그리고 그의 딸이 연결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마그나손은 그의 아이에게 현재 함께 생존하고 있는 94살의 증조할머니의 나이와, 딸아이가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나이, 그리고 그 아이의 증손녀가 증조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시간을 더해보라고 한다. 아이는 찬찬히 계산을 하며 답을 말했다. 총 262년.


262년이라는 세월이,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시간이라고 계산하는 작가의 말에 가슴이 떨렸다. 그가 시간을 연결하는 셈법은 단순했지만 수치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으므로. 한 사람이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직접적 세월의 길이가 262년이라니.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한 사람이 빚어낸 시간과 앞으로 내가 빚어내야 할 시간이 오래도록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현 시간이 내 손녀와 증손녀, 그의 증손녀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지금의 나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에겐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262년보다는 짧은 관계 맺음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 대신 나는 외할머니를 통해 그녀가 살아온 세월을 간접적으로 겪으며 그녀가 자연환경과, 사회와 맺은 관계들을 살펴본다. 그녀는 자연이 허락하는 내에서 나물을 뜯고, 나무를 거뒀으며, 씨를 뿌리고 채소를 수확했다. 외할아버지가 쓰러진 이후, 4남매를 키우기 위해 혼자 가계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새벽마다 장에 나가며 고추 장사를 해냈다. 새벽 3시에 나가 저녁 8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고된 삶 속에서도 ‘하하하’ 큰소리로 웃고, 인색하지 않으며 넘치는 사랑을 준 그녀 아래 나의 엄마가 나고 자랐고, 나도 태어난 이후 그녀의 넉넉한 품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그녀가 빚어낸 시간의 결과물로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빚어나갈 오늘의 시간이 나의 딸과 그의 딸에게 연결되어 내가 관계 맺는 시간 동안 이어질 것을 생각해 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을 열심히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아빠보다 엄마가, 친할머니 보다 외할머니가 나를 더 예뻐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전자가 전달되었음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에서 결혼제도를 통해 맺어진 부부는 자녀에게 동일하게 유전자를 물려줬겠지만, 유전자 검사를 해 보지 않는 이상 확실한 것은 여성이 낳은 자식이 그 여성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런 과학적인 근거와 그로 인해 심어진 인간의 사회 심리학적 요인 덕택인지는 몰라도 친할머니는 규칙을 정해주고 깐깐한 호랑이었지만 외할머니는 늘 너그러운 느티나무 같았다. 나는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왔다. 그녀들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인지, 그 둘에 대한 나의 사랑도 한 없이 커다랗다. 나는 이 사랑을 나의 딸과 나의 외손녀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냥 외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의 외할머니 같은 외할머니가 되고 싶다. 조건 없이 사랑을 담뿍 주고,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주변을 보살필 줄 아는 어른으로, 아이가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외할머니로 살아보고 싶다. 모계로 이어지는 생의 아름다움을 나의 아이와 손녀에도 전해 줄 수 있기를. 죽기 전에 꼭 외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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