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고 싶네…
미국생활은 보통 지루한 게 아니다. 직장을 다니지도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백수는 만날 사람도 없고, 혼자서 할 거리도 없다. 카페를 가도 혼자 글을 쓰고, 도서관에 가도 혼자 책을 읽을 뿐, 남편이 오기 전까지 말할 상대도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간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켜놓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유튜브 영어공부 채널의 구독자 수가 100명이 되었다. 힝구는 구독자 100명 돌파 기념으로 하와이 여행을 제안했다. 하와이 여행이란 제안을 뿌리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비싼 여행 경비를 생각하고, 가계 살림을 걱정하는 주부 구단이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맞지만 아직 초보 주부인 나는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하와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는 의도치 않았지만 지난번 간 에어 bnb와 같은 건물인 ‘선셋 와이키키’였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도보 4분 정도 걸리는 이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호텔 겸 콘도다. 저 멀리 건물들 사이로 해변이 보이는 나름 오션뷰 숙소에는 서핑보드와, 비치 체어가 놓여있었다. 하와이를 맘껏 누리라는 주인장의 배려가 넘치는 집이었다. 같은 건물에 두 번이나 오니, 부자들이 와이키키에 여름 콘도를 하나 만들어 놓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했다.
힝구와 우리는 숙소에 간단한 짐을 풀자마자 스노클링 기어를 챙겨 샥스코브(sharks cove)로 향했다. 하와이에서 스노클링 하기 좋은 장소로 손꼽히는 이곳을 지난겨울에 찾았을 땐 거센 파도가 해변을 덮쳐 인명피해가 발생해서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러 다시 찾은 산호로 막혀있는 잔잔하고 얕은 에메랄드 빛 만과, 끝부분이 깊은 바다와 연결되어 열려있는 깊은 만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와 힝구는 겁 없이 깊은 만에 몸을 던졌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다 이리저리 손발로 유영하는 우리의 몸. 눈 아래로는 정어리처럼 생긴 이름 모르는 물고기 수백 마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일렁였다. 중간중간 지나다니는 크라운피시(니모)와 수컷 봉황의 깃털 같은 꼬리를 흔들고 사라지는 물고기들을 따라 우리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중력을 거스르는 몸과 자연에 동화된 마음. 힝구와 내가 마주한 하와이는 뇌에 다 담을 수 없는 넘치는 자극을 주었다. 직선 도로와 직각 형태의 건물만 존재하는 텍사스에선 볼 수 없는 곡선들로 이루어진 지구가 눈과 머릿속을 꽉꽉 채웠다.
얕은 만에는 큰 파도에 떠밀려왔다가 산호벽에 갇힌 물고기들이 옅은 바다색에 수를 놓듯 헤엄치고 있었다. 그곳엔 상어도 있었다. 6살 된 아이들도 수영하며 자연을 탐험할 수 있는 자연이 선물한 체험형 수족관이었다.
장장 4시간의 스노클링을 멈추게 한 건 힝구의 배고픔 때문이었다. 더 떠다니고 싶었는데, 힝구의 위장은 계속해서 음식물을 넣으라 요구했다. 내일을 약속하며 우리는 샥스코브를 떠났다.
와이키키의 밤은 여느 미국의 휴양지와 다를 바 없었다.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쇼핑센터와 식당가.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 그 틈에서 우리도 관광객 커플이 되어 유명하다는 맛집에 줄을 섰고, 꼭 먹어야 한다는 쿠키를 사 먹었다. 그래도 한 번 와본 도시라고 꽤나 익숙해져 동네 저녁 산책을 나가듯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게 재미있었다.
이튿날도 샥스코브로 향했다. 와이키키에서 샥스코브를 가기 위해서는 서쪽의 할아이와를 거쳐야 한다. 할아이와는 하와이의 역사를 간직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오래된 작은 마을이다. 내가 생각하는 하와이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그곳에서 귀여운 엽서들을 사고 하와이식 점심 깔루아 피그를 먹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하와이안들이 다리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한껏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또 한 차례 스노클링을 하고 물에 멀미가 날 때 즈음에서야 우리는 물 밖으로 나왔다. 지난번에 못 가 본 파인애플농장도 가보고, 저녁으로 피자를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도 울렁울렁 거리는 느낌이었다. 공기 중에 있어도 파도에 떠다니는 느낌이 계속 들어 재미있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기 전, 와이키키 해변에 앉아 도넛을 먹었다. 해변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여행 메이트 힝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행하고 따라다니는 게 괜찮아? 다른 사람들처럼 가야 하는 명소나, 관광지에 가고 싶지 않아?”
“나는 자기 따라다니는 게 좋아. 가끔은 생각을 안 해서 멍청해지는 것 같지만, 재미고 즐거워. 남들 다하는 대로 하는 게 여행은 아니잖아.”
많은 곳을 다니기보다는 깊은 경험을 하려고 하는 내 여행방식이 힝구와도 잘 맞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중에 다시 하와이에 오면, 또 다른 곳을 발견하는 재미를 남겨 두기 위해 짧은 여행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휴스턴으로 가는 9시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