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 방문기 1 (23.05.10.)
영주권 신청 후 7개월. 드디어 그린카드가 승인되었다는 이민국 어플 알림을 받았다. 당장 집으로 튀어가고 싶은 마음은 그린카드를 받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한국에 입국 후, 카드가 도착하면 남편이 한국으로 가져오면 안 되나 하는 계획에까지 이르렀지만 실천하진 못했다.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기 싫었으니.
실물 카드를 수령하면 바로 한국에 들어갈 거라 다짐을 했다. 그런 다짐에 대한 실천으로 내가 한국 간 사이 혼자 텍사스에 남겨질 힝구의 도시락을 8개나 미리 준비해 냉동실에 얼려놓았다.
그린카드가 샌프란시스코 집으로 발송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동의 자유가 이토록 소중한 것이었다니. 집과 가족, 친구들이 그리웠던 나는 미국에 발이 묶여있단 사실에, 그것도 언제까지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영주권을 받으면서 나는 이제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영주권이라고 하면 이곳에서 더 오래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권리를 준 것인데, 나에게만큼은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급하게 짐을 싸는 바람에 주변인들에게 줄 이렇다 할 선물도 챙기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선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빨리 한국 땅을 밟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인천공항 입국장을 뛰쳐나오며, 나는 크게 소리를 내어가며 웃었다. 얼굴에서 미소를 빼는 방법을 잠시 잃어버렸달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감춰지지 않아 주체할 수 없었다. 함께 한국에 따라와 준 힝구도,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했다. 한국어 표지판이 보이고, 익숙한 말소리들이 들리는 곳에 오니 정말 고향에 온 것 같은 마음이었다. 한국, 국가를 고향으로 생각하게 되다니, 글로벌한 이은진이 다 되었다.
한국에서의 여정은 짧지만 깊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힝구가 처음 일주일을 함께 해 주어, 정말 행복했다.
최초의 일정은 대전에서 동생들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동생들과 쏭을 만나 청국장을 먹는 저녁.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첫째 날을 보내며 집으로의 귀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대를 뛰어넘은 여행을 한터라 시차적응에 실패한 힝구와 나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전민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산책을 하고, 일찍 문을 연 “엄마김밥”으로 고픈 배를 채웠다. 김밥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일 줄이야. 그 후로 3일간 우리의 아침은 새벽 6시에 김밥으로 시작되었다. 힝구와 처음으로 인생 네 컷도 함께 찍었다. 머리도 자르고, 증명사진도 찍고,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도 갱신했다. 한국에선 뚜둑 딱 할 수 있는 일들이 미국에선 5배에 가까운 돈과 시간을 들여야 했기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무를 하루에 걸쳐 보아야 했다. 직장인 학교도 잠시 들러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고, 천안으로 이사해서 홀로 집을 고치고 계신 시어머님도 찾아뵈었다. 혼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어머님은 몰라보게 홀쭉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여 조금은 속이 상했고, 그녀가 이루어 놓은 새로운 집의 대단함과 난해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어서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가장 걱정하고 보고 싶었던 외할머니를 보러 요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요양원에 들어가셨고, 할머니의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엄마는 눈물을 가득 묻힌 얼굴을 한 채 페이스 톡으로 이 상황을 전했기에 나는 정말 많이 걱정했다. 30분 동안의 면회 시간이 주어졌고, 휠체어를 타고 나온 할머니는 단박에 나와 김서방을 알아보셨다. 역시 똑똑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잔뜩 여위어 있었지만 초롱 같은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를 건네셨다. 할머니의 샘솟는 창의력은 TV에 얼굴을 비춘 대통령이 내일 방문할 예정이니 소를 잡아야 한다, 할머니에게 상을 주려고 한다 처럼 긍정적인 상상으로 가득 차, 조금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상상과 현실 사이 어디 즈음에서 열심히 길을 찾고 있는 나의 사랑 보며,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 걱정과 안도가 한순간에 밀려왔다. 나의 할머니가 나에게 준 사랑을 온전히 되갚을 수 없음이 미안했고, 이렇게 나를 기다려 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보고 싶은 얼굴을 찾으며 나는 한국에 왔음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