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배우는 어른
나에겐 조카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도윤. 나보다 6살 많은 외사촌 오빠의 아들이다.
아이들이 크는 건 참 신기하다. 명절 때나 가족 모임 때만 봤던 그 애가 벌써 커서 초등학교에 다닌다니.
두 살이었던 도윤이에게 “고모 해봐 고모”하며 나의 호칭을 알려줄 때
나: 고 해봐 고
도윤: 고!
나: 모 해봐 모
도윤: 모!
나: 고모!
도윤: 뿌지!
”고 “도 할 줄 알고 ”모“도 할 줄 아는 애가 고모라는 단어를 유추할 수 조차 없는 다른 두 음절을 뱉었을 땐 나를 놀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아동의 발달 단계 상, 두 살의 유아가 한 개의 음절은 따라 할 수 있어도 단어를 이야기하는 건 어렵다는 걸 모른 채 말이다.
유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고모가 초등학생이 된 도윤이와 3박 4일을 함께하며 놀라웠던 건 아이가 주는 행복한 에너지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이번 이야기는 도윤이와 힝구 사이의 일화다.
외갓집에 도착한 힝구는 도윤과 함께 슈퍼로 향했다.
차 안에서 했던 약속, ‘아이스크림 사줄게.’를 지키기 위해서.
마을 아래쪽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도윤이는 고모부에게 물었다.
도윤: 삼촌, 그런데 고모 거는 안 사요?
고모부는 마음 착한 도윤이를 놀리고만 싶었다.
힝구: 안돼, 고모는 뚱뚱보라서 아이스크림 사주면 안 돼.
도윤: 뚱뚱보라고 하면 안 돼요. 그건 고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에요. 그럼 고모가 슬퍼해요.
힝구: 그럼… 뚱보라고 하면 돼?
도윤: 안 돼요. 뚱보도 기분 나쁜 별명이에요.
힝구: 그럼 돼지는?
도윤: 그것도 안 돼요.
힝구: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되는데?
도윤: 음….
.
.
.
.
.
살찐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찐애라니 ㅋㅋㅋㅋ
그 순수하고 사려 깊은 대답을 힝구에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왜곡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야 상대가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생각.
맞는 말이지만 팩트로 두들겨 맞는 아픔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온 순수한 그 묘사 ”살찐애“가 나는 너무 귀여워 죽는 줄 알았다.
금쪽이를 보며 대리 육아 훈련을 했던 나는 아이들은 늘 보살피고 지도하고 훈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도윤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들도 주변을 살피고 배려할 줄 아는 존재라는 걸,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힝구가 나에게 일화를 전해줄 때 옆에 있던 도윤이는 빵 터져 웃는 내 옆에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하게 서있었다.
”도윤아. 고마워. 고모 뚱뚱보 아니지? 고모는 귀엽게 통통한 거지? “
”네, 맞아요. 고모는 귀엽게 통통해요. “
아이에게 세뇌교육을 시키며 나는 그 애를 꼭 껴안았다.
작고 마른 몸에 나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들어있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찌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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