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 피곤하지도 않은데, 어두운 기내의 공기에 눌려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외할머니를 만났다.
꿈속의 할머니는 최근의 흰머리 가득하고 여윈 모습이 아니었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잔잔한 꽃무늬 티셔츠와 브로콜리처럼 잔뜩 부풀어 오른 검은색 파마머리, 넉넉한 살집을 가진 옛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탄 차 안에서 평소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셨다.
잠시 후, 화면이 전환되고 온 외갓집 식구가 다 모여 김장을 했다. 꿈은 현실과 비현실이 모호하게 뒤썩여 있었는데 허리가 부러져 요양병원에 있던 할머니가 잠시 외출을 나온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지만 꿈속에선 나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할머니는 허리를 굽힌 채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가며 배추를 절이고 커다란 무를 싹둑싹둑 썰었다. 예전모습 그대로. 온 식구가 모여 방금 담은 김치와 수육으로 식사를 끝내고 할머니는 강 옆에 서서 각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큰 외숙모네 식구들, 막내 외삼촌네, 우리 식구들 모두 차례대로 사진을 찍었고, 우린 너무나도 행복하게 저물어가는 저녁을 바라보았다.
꿈에서 깬 나는 어질어질 했다. 너무 생생한 나머지 비행기에서 내려 안동으로 가면 우리 할머니가 꿈속 모습 그대로 나를 맞이할 것만 같았다. 기분 좋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몽롱해하던 와중 차가운 사실이 머릿속에 한줄기 꽂혔다. 할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면회조차 어려운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가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홀로 계신다.
기존에 계시던 요양원에서 압착성 허리골절로 지난주 병원으로 옮겨졌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할머니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다. 노인을 잘 보살피지 않은 요양원 측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가도 아무도 할머니를 모시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니 삼촌, 숙모, 엄마 아빠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챙기지 않은 어른들을 탓하며 슬퍼하다 어느 순간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린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속에서 책임소지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왕복 세 시간의 길을 달려 일주일에 두 번씩 면회를 가는 엄마. 매일 할머니를 찾는 큰삼촌과,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할머니를 찾는 막내삼촌. 그들은 그들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홀로 계신 자신들의 엄마를 정성껏 챙기는 중이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마음만으로 걱정하는 나보다, 자신들의 삶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할머니를 돌본 삼 남매를 탓하는 건 안될 말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사연인 즉, 병원에서 말기 암투병 중인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본인과 아들로선 집에 홀로 남편을 둘 수도 없어 그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고, 남편이 죽기 전 원하는 걸 들어주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사연이었다. 스님은 생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금도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로서 충분이 제 역할을 다해 내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먼저 전하셨다. 현 상황에서 환자의 보호자들이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일이 필수적이고,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이치는 아버지에게도 적용되기에 아픈 환자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여 하는 것이라 했다. 최선을 다하는 사연자에게 스님은 말했다. 더 잘하려고 무리하고 애쓰다 지쳐버리면 오히려 이 고생이 끝났으면, 남편이 얼른 죽었으면 하는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게 된다고, 몸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니 남편이 원하는 대로 못해준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은 마음의 위로가 되었지만 더 잘해드릴 수 있었던 점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내 사랑이 일 년 전만 해도 거동이 불편하긴 하지만 하루에 몇 시간씩만 도움을 받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
이번 한국 방문은 엄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함과 동시에 할머니를 찾아뵙고, 얼마나 우리가 사랑하는지, 할머니의 존재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게 사랑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는지 감사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주신 사랑만큼 가족들의 사랑과 따뜻한 온기를 가득 담아가셨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어제 병문안을 다녀온 엄마의 눈은 이미 한바탕 울음을 터트린 듯 빨갛고 촉촉한 채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미음과 링거액으로 연명하는 할머니를 보고, 엄마는 마음이 아파 울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시간. 나는 세상이 할머니에게 조금은 온화해서, 그간 많이 고생하셨으니, 많이 아프고 힘들었으니, 이제는 고통에서 둔감해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주길 간절히 바란다. 진통제가 잘 들어서 통증이 덜했으면, 할머니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던 때에 머물렀으면.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그날이 온다면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지금껏 뿌린 사랑을 확인하셨으면 한다.
할머니를 향해 날아가는 지금. 나는 꿈속에 나타난 그녀가 머릿속에서 지워질까 급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사랑하는 그녀를 내 글에다 담고 영영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