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공존
엄마가 환갑이다. 지나가는 세월에 따라 나이가 변하는 게 새삼스럽다. 영양상태와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옛날에는 60까지만 살아도 대단히 축하할 일이었기에 동네사람들을 다 초대해 앞으로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환갑잔치를 벌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환갑을 맞이한 엄마는 여전히 예쁘고 젊은 내 엄마다. 길어진 인생에서 이제는 조금 더 걱정 없고 여유로운 2막이 열린 샘이다. 새로운 행복과 일상이 엄마의 하루하루를 채우길 바라는 마음이다.
환갑이 잔치가 아닌 파티가 된 시대에 맞춰 현수막과 케익, 꽃과 선물을 준비했다. 장난감 왕관과 귀걸이, 목걸이를 한 울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예쁘고 소녀 같다. 예비사위는 딸들도 준비하지 않은 손 편지로 진심을 전해 엄빠 모두의 심장 속 감동버튼을 눌렀다. 그의 존재에 나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생일 케이크의 초를 불며 엄마는 엄청 울었다. 펑펑 우는 게 감동을 넘어선 걸 판단하는 순간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생각났으리라 알아챘다. 엄마와 세 딸이 침대에 누워 이야기하던 그날 밤, 엄마는 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엄마에겐 이런 파티를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 골절된 허리로 인한 통증이 그녀를 힘들게 할 것을 알기에 느끼는 안쓰러움, 머지않아 다가올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사실 이번 엄마의 환갑은 가족 여행으로 다낭에서 보내려했지만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단 소식에 모두 취소했다. 일상을 유지하며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게 준비하라고 큰외삼촌이 엄마에게 말했다. 딸들과 예비사위가 모두 모여 파티를 하고 생일상을 받는 순간에도 엄마는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삼촌의 전화에 긴장하고 있었을 거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한 생일상을 맛있게 비우고, 아빠의 설거지가 끝난 후, 아빠는 큰외삼촌의 전화 한 통에 바로 마당으로 나갔다. 엄마는 샤워 중이었기에 그 사실을 몰랐지만 수빤과 진매, 나는 그저 조용히 아빠가 떠난 빈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의 순간은 너무나 무겁고 고요했다.
아빠는 돌아와 할머니가 의식을 되찾아 내일 오전에 면회를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수빤이는 연차를 쓰고 할머니를 보고 가겠다 했다.
시차 때문에 조금은 일찍 잠이 깬 아침. 조금 있으면 할머니를 보러 간다. 나는 할머니께 그간 뿌려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계속해서 전할 거다. 사랑을 듬뿍 주신 할머니 덕분에 그런 엄마를 갖게 되었고 그런 내가 되었다고. 그리고 얼마나 우리가 사랑하는지 질리도록 잊어버리지 않게 반복해서 이야기할 거다. 면회 뒤 또다시 병실에 홀로 있을 할머니의 기억이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랑을 주입할 거다.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 하나의 시간 속에 서로 마구 뒤섞여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행복한 순간도 불행하고 슬프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다 차곡차곡 쌓여 오늘이 되고 인생이 된다. 그 시간의 한가운데 나는 서있고 또 그를 헤쳐나갈 거다. 분명한 건 지금의 나를 이룬 모든 시간 속 나는 다른 누군가들과 함께 있었다는 거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이들과 함께 있어 나는 다가 올 시간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