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시어머니
“당장 나가!! 여기 내 집이니까, 나가!!”
고함소리가 다락과 2층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 정도 데시벨이면 분명 옆집까지 소리가 넘어갔을 거다.
“여보 짐 싸.”
조용히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지하 차고에서 이삿짐을 쌀 검은색 플라스틱 상자를 가져왔다. 우리는 별말 없이 짐을 챙겨 넣었다. 내가 그린 그림도 벽에서 다 떼어내고, 엄마가 사준 고무장갑, 행주들도 상자에 차곡차곡 쌓았다.
당장 입어야 하는 옷들과 써야 하는 전자제품들은 커다란 캐리어에 담고, 나머지 짐들은 잠시 집에 남겨둘 두 차에 나눠 실어 놓았다. 세 시간 반쯤 걸려 짐을 다 싸고, 어머님 방문을 두드렸다.
“어머님, 저희 갈게요.”
한껏 흥분했다가 이제야 진정하셨는지 어머님은 늦었으니 얼른 쉬라는 말씀을 남긴 채, 머리 위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우리는 공항 근처 호텔로 향했다. 남편이 찾을 수 있는 데 중 가장 싸다며 예약한 그곳의 하루 숙박비는 240$였다. 우리는 여행을 온 게 아닌데, 남편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미국의 방 찾기 앱인 Zillow로 몇 군데 방문 약속을 잡고, 잠을 청하기 전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갑자기 나올 줄 알았어?”
“아니, 맨날 이러는데 뭐, 그냥 또 아무 일 없었던 듯 내일이 되면 또 엄마랑 이야기하고 그런 거지. 그런데 자기가 짐 싸라고 해서, 그냥 나도 싼 거야.”
“나는 저렇게 소리 지르는 곳에서 못 살아.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고, 불행해질 것 같아.”
“잘했어. 하지만 시간이랑 돈이 부족하니 빨리 살 집을 찾아보자.”
침대에 누운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의 월세들을 살펴보았다. 침대 방 하나가 딸린 원베드가 죄다 2,300$에서 3,000$ 언저리에 나와있었다. 월세로 최소 300만 원이 나간다니. 한국에선 생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이곳, 샌프란시스코였다. 한순간에 홈리스가 된 우리의 가출 겸 분가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월세 300만 원을 낼 각오로 집을 나온 거다.
집을 나온 바로 다음날,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엄마가 화가 나서 소리친 것 가지고 진짜 짐 싸서 집 나가는 게 어딨냐고, 꼴값 떨지 말고 집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례했는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며 자식을 키웠는지 오래된 레퍼토리를 또 한 번 들려주셨다. 녹음된 음성파일을 듣는 듯, 늘 똑같이 반복되는 그 이야기. 사건의 발단은 어머님이 제공했을게 분명했지만 싸움이 일어나던 시점 그 자리에 없었던 나로선 어머님의 하소연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우리는 집을 보여줄 중개사를 만났고, 수요자 없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머님의 이야기 공급을 차단하지 않은 채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2,575$ 골든게이트파크 바로 옆,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 집은 결국 우리에게 다시 연락을 주지 않았다.
집을 나온 그날은 어머님이 한국에서 돌아오신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내가 잠시 나가있는 동안 퇴근한 남편과 어머님의 한바탕이 벌어졌던 거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소강상태였던 어머님은 남편 들으라는 듯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글쎄 내가 자주 쓰고 필요한걸 다 버려놨어. 냄비도 유리병도 다 용도마다 쓸모가 있고 다른데,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네 남편이 만들어 놓은 난장판은 네가 치워라. 집도 없으면서 맨날 사치나 하고 다니는 놈. 너도 똑같다. 싹수없는 것들. 아무것도 없으면서 밖이나 나돌아 다니지."
어머님 말씀 중에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남편과 그의 형제들 명의인 낡은 그 집 안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가구와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었고, 나와 남편은 어머님이 한국에 가신 지난 4개월을 그곳에 머물며 청소하고 수리했다. 곰팡이에 절어있는 각종 쓰레기를 버리는 데만도 1,000$이 들었다. 자신의 물건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실까 봐 뒷마당의 창고와 지하 창고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집 안만 치운데 든 돈이었다. 아마 그 집의 물건들을 비우려면 6,000$은 더 들여야 할 거다. 낡은 지붕을 새로 하는데 20,500$, 다락방 바닥과 벽, 부엌을 고치는데 6,000$이 들었다. 그마저도 미국의 살인적인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우리가 직접 공사를 했기에 그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페인트 칠을 하고, 공사를 하느라 퉁퉁 불은 손은 한동안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남편은 여전히 손목을 돌릴 때마다 욱신거리는 터널 증후군이 생겼다. 우리의 시간과, 돈, 노력으로 쓰레기 집은 그나마 살 수 있을 만한 집이 되어 가고 있었다.
1940년대 지어져 낡고 냄새나는 그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치운 우리의 노력은 어머님 본인의 물건을 버린 후레자식이란 비난으로 돌아왔다. 지난 20년간 길에서 주어온 쓰레기들. 유리병, 병뚜껑, 전기밥솥 10개, 냄비와 팬 100여 개,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차 있었던 그곳을 치운 대가는 욕설과 스트레스였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왜 버렸어 왜?"에 화가 난 남편이 엎질러 놓은 카레가 부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머님은 또 나를 따라다니며 "네 남편이 난장판으로 만든 거 네가 치워라."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아늑하게 꾸며놓은 다락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어머님은 그곳까지 나를 따라 올라와 울부짖었다.
“싸가지 없는 것들. 당장 나가!! 여기 내 집이니까, 나가!!”
"여보 짐 싸."
집을 나온 다음날, 어머님은 전화로 한바탕 나와 남편의 싸가지 없음을 퍼붓다가, 돈이 없어 식료품을 살 수 조차 없다고 하셨다. 남편이 준 카드를 쓰라고 했지만 한국에 두고 오셨단다. 나와 남편은 현금 400$을 가지고 어머님께 갔다. 집에 온 우리를 보자 어머님은 어제의 분통이 도졌는지 목청을 높이셨다. 남편과 어머님이 대적하면 아침부터 동네 부끄러운 고성이 오고 갈 것 같아, 나만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싸가지 없는 것들, 너를 그렇게 안 봤는데 내가 사람 잘못 본 것 같다. 그렇게 생각 없는 앤 줄 몰랐다. 꼴값 떨지 마라 등등 폭언이 날아왔다. 아무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말들. 나를 향한 바늘 돋친 말에 부여잡던 정신줄이 뚝하고 끊겨버렸다.
"어머님! 제발 그러지 마세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어머니 보다 더 큰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제가 어머님께 잘한 것도 없지만,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폭언을 들어야 하나요? 어머님은 저한테 무슨 억한 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소리 지르세요? 저도 듣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잘못 보셨다고요? 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어머님이 예의를 지키실 때나 착한 며느리지, 이렇게 나쁜 소리 듣고 예예 하며 웃고 지낼 생각 없습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니 감정이 더 격양되었다. 시어머니는 충격에 빠지셨는지 거의 발악하셨다. 내 손에 있는 400$을 뺏어다가 서랍 안에 넣고선 또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나가,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쾅하고 현관이 닫혔다.
바로 다음날, 우리는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집을 골랐고, 입주 지원서를 넣었다. 집을 나온 지 나흘째 되던 날, 새집을 계약하고, 그다음 날부터 이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금 앉아 글을 쓰는 아파트를 찾게 되었다.
집을 나오고, 나는 시어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왜 그녀가 쓰레기로 집을 채울 수밖에 없었는지. 자식보다 수십 년간 모아 온 물건을 더 소중히 여기는지. 집이 그녀에게 가지는 의미가 뭔지. 무엇이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는 미국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300만 원의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건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글은 시어머니와 그녀를 둘러싼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고달프고 힘들지만 어떤 날은 햇볕이 들어 기쁜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몰랐던 고단한 인생사가 나에게도 들이닥치는 것 같아 조금은 긴장이 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믿고 시어머니를 탐구하기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