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의 우주
나는 시어머니가 싫다. 너무 거친 말인가 싶다가도 이보다 내 마음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문장은 없다는 걸 느낀다. 딱히 우리 시어머니가 싫은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들, 결혼을 하면 따라오는 배우자의 어머니, 시어머니라는 개념 자체가 싫은 거다. 아마 이런 나의 불호는 친할머니로부터 왔을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래 봐 온 시어머니는 엄마의 시어머니인 나의 친할머니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36년째 모시고 살고 있다. 올해 만 92세인 김여사님는 엄마가 결혼한 이래로 쭉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친할머니는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의 표상이었다. 가난한 집에 엄마가 막 시집왔을 때, 홀 어머니였던 친할머니는 허구한 날 엄마를 구박해 댔다. ‘요리를 못한다. 집에서 배운 게 이거뿐이냐?’ 욕까지 섞어가며 각종 폭언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다 쓰러져 가는 한옥 마당에서 손이 부서질 것 같은 차가운 물에 손빨래를 해야 했다는 엄마. 둘째를 가졌을 때, 졸음이 쏟아져 까무룩 잠들었다가 밥을 안 지었던 엄마에게 외출하고 돌아온 할머니는 “왜 밥을 안 했노? 배가 안 고픈 모양이제? 니도 한번 굶어 봐라.” 하며 임신한 며느리를 굶겼다. 엄마한테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세 자매에게도 늘 잘 못한 것만 지적하고 사랑이 없는 할머니. 언젠가는 자신이 실수로 잃어버린 500원을 내가 훔쳐갔다고 도둑으로 몬 적까지 있다. 아흔둘에도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며 엄마가 정원에 심어놓은 꽃들을 모조리 뽑고, 20년 된 벚나무를 베가며 호박과 파를 심는 그녀. 누군가가 필요할 때 곱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손끝으로 탁탁 때린다. 무언가를 건네주면 휙 하고 낚아챈다. 요즘엔 연기에도 물이 올랐는지 처음 보는 사람 앞에는 그렇게 순수하고 다정한 척하며 “아이고 그랬는교?”하다가 집에만 오면 또 자신의 고집대로 모든 걸 지배하려고 한다. 그런 할머니를 오래 보아온 나는 시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큰 기대감이 없을뿐더러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엄마의 삶을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악착같이 일해서 처녀 때부터 자신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대전 동구에 한 주공아파트. 80년대 중반, 시어머니는 발을 만들어 팔았다. 커튼처럼 가림막이 되는 발은 그때 당시 흔하게 활용되는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시어머니는 재료를 사다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일감을 나눠주어 완성품을 만들고, 그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 혼자서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며 고용창출까지 할 수 있는 젊은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나는 전설로만 내려오는 그녀의 처녀 적 이야기에 감명을 받는다.
그랬던 그녀는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내가 만난 그녀는 영어도, 운전도 못하며 미국에서 고물을 사모 우고 주워 집을 채웠다. 어머님은 자신을 굉장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자신 명의의 90평 필지 집을 소유하고 있고(물론 낙후된 지역의 허름한 집이지만), 미국에서도 자신의 명의는 아니지만 아들들 이름으로 된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집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지난 20년간 모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진정으로 경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중 좋은 물건을 골라서 팔거나, 혹은 물건들을 싹 치워 빈 공간을 임대해서 현금흐름을 만들 테지만 시어머니는 이들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계신다. “내 집, 내 집”을 외치는 그녀는 결코 경제적이지 않은 선택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시어머니가 젊었을 때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녀는 공부도 하지 못 한 채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어린 동생은 병으로 죽고, 그나마 있는 언니도 자기 살기에 바빠 그녀는 진정으로 자립해야 했다. 그녀는 가족에게 받아야 하는 사랑을 신도가 많지 않은 어느 종교에서 찾았다. 꽤나 규율이 강한 그 종교는 아무런 지침과 방향성이 없었던 시어머니의 삶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하나님을 찾지만 일반적 개신교의 주요 종파와는 결이 다른 그곳에 적을 두며 시어머니는 험난한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종교의 다른 신도들처럼 종교에만 빠져있지만도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힌 가난 때문인 건지 그녀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자주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그렇게 발 사업을 하던 20대 후반의 시어머니는 납품을 위해 찾아간 한 커피숍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한 은행의 지점장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커피숍 주인에게 시어머니의 연락처를 얻어 몇 번이고 연락하고 그녀를 찾아갔다. 키도 큰 데다 예쁘장한 어머님을 보고 부잣집 딸이라고 생각했다가 훗날 뒷조사를 했는지 부모가 없는 아가씨라는 걸 알고서 그는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그리고 어쩌다 나의 시어머니는 미혼모가 되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벌던 미혼모. 80년대 말, 90년대 초,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가며 나의 시어머니는 내 남편을 키워냈다. 초보 엄마는 생계유지를 위해 아기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할머니나, 아주머니에게 맡겨두고 일을 나갔다. 자신과 자매들, 엄마를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는지, 자신은 절대 자식을 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교육과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어머님은 먹이고, 재워주면 아이는 저절로 크는 거라 생각했나 보다. 어린 남편은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유치원 교육 없이 자랐다. 누구 하나 훈육하지 않았던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독립적인 말괄량이로 자라났다. 빨간색 붕붕차를 타고 계단에서도 구르고 포크로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찍어 놨다.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받는지 모르는 둘은 밤이면 꼭 안고 잠이 들었을 거다. 서로에게 둘 밖에 없던 시절. 남편과 시어머니가 싸우면서도 애틋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관계를 그 시절이 만들어 놨나 보다.
엄마와 아빠의 울타리 덕에 표준적 트랙에서 성장한 나는 사람의 인생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비극과 희극을 주변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가장 가까이에선 나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볼 수 있다.
엄마의 시어머니로써 늘 못됐기만 했던 친할머니도 지금의 그녀가 될 수밖에 없는 유년기를 거쳤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계모 아래서 자란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인식하는 단계에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요깃거리를 찾아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산나물 뿌리를 뽑아 먹고 나무줄기를 벗겨 먹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풍파를 홀로 헤쳐 나온 것 같은 마음으로 젊은 그녀는 작은 몸속에 엄청난 가시를 품게 되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심장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시집을 와서도 본인의 시어머니에게 못됐게 할 정도의 성격이었으니 자신의 며느리인 우리 엄마에게 못되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어린 시절 부모가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한 사람의 인격과 인생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배우자인 할아버지도 빨리 돌아가셨으니 인생은 그녀에게 늘 모질었다. 떡 장사를 하며 삼 남매를 억척스레 키운 그녀. 여유롭고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오늘이지만 그녀에게서 인품 좋은 어른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할머니는 2024년에도 1970년대와 똑같은 삶의 태도를 고수한다. 이해도 되고, 가엾기도 하지만 그녀의 아픔이 나와 엄마를 찌르는 무기가 되어 오늘까지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으니 할머니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은 늘 어지럽다.
외할머니도 친할머니와 동일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녀는 김여사 님과는 너무 다른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다. 외할아버지가 일찍이 병들어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추를 등에 업고 산등성이를 넘어 다녔다는 외할머니. 여섯 식구의 가장이었지만 늘 호탕하게 웃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만들어낸 사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추억할 때마다 나는 늘 눈물이 난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엄마의 존재유무다. 외할머니는 본인의 엄마가 시집간 딸의 집에 찾아와 함께 살 정도로 서로를 위하고 사랑을 주셨으니 그 사랑이 대를 이어 흘러져 나와 나도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주 양육자를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아이는 세상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부모가 된다는 건 한 아이의 우주가 되는 것이란 말은 그들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지대한 영향을 잘 표현한 글귀다.
세상의 풍파로부터 딸들을 지켜내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준 엄마, 아빠의 사랑 덕분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우리에게만큼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줘서.
물론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지금 시어머니와의 갈등 아닌 갈등을 겪으며 그녀를 이해해 보고자 애쓰지만 마음이 활짝 열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에. 그보다 어려운 유년기를 겪은 내 남편에 대한 애잔함에 눈물이 난다. 만약 그때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모자랐다면 내가 충분히 채워주고 싶다. 물론 어른이 된 우리지만 성장은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