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은 만국 공통분모
우리가 집을 나가기 하루 전날에도 이미 큰 싸움이 일어났다. 어머님과 남편은 동네가 떠나가라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자신이 따로 모아둔 소품 나사를 서랍 안에 넣어뒀는데, 그것까지 굳이 빼서 버린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다. 서랍 안에는 입던 팬티, 곰팡이 쓴 과자, 각종 비닐봉지와 쓰레기들이 뒤엉켜 있었다. 지저분한 서랍을 열어 본 이상, 그 안을 비우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어머님께는 본인이 찾는 그 소품이 보물이나 다름없었기에, 사라진 물건에 대한 추궁과 우리를 향한 고함은 끊이지 않았다.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게 고통이었다.
어머님과 남편의 싸움이 끝나고, 나는 바로 앞집 이웃인 Preeti(프리티) 네로 향했다. 그녀에게 차를 얻어 마시며 집안의 소동 때문에 동네가 시끄러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IT분야에서 일하기에 재택근무를 하며 우리 집과 정면으로 마주한 방을 사무실로 사용한다. 프리티의 사무실에서 우리 집 거실의 통창이 TV의 프레임처럼 보일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인도출신인 프리티는 본국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을 겪는 상황은 부지기수라고 했다. 시댁과의 갈등은 만국 공통분모인가 보다. 프리티는 자신의 시부모가 아들의 결혼 후,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전통을 따라 지난 2년간 6개월씩 매년 인도에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인 미국까지 와서 살고 간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늘 고상하고 정제된 이야기만 하던 그녀에게서 fucking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왔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방문 비자가 최대 6개월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었다면 결혼 후 지난 세월 내내 그들과 함께 지냈어야 했다며 분이 끓는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좀 멋져 보였다. 프리티는 건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자리에 굳건히 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며느리로서 시어머님의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옛날의 미덕은 현대사회에 맞지 않다면서.
그녀의 말에 100프로 공감했지만 시어머니와 우리가 겪는 문제는 전통의 가치관과 현대의 가치관이 부딪혀 오는 갈등이 아니었다. 어머님 개인이 살아온 세월과 오늘날 사람들의 통념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었다.
프리티는 언젠가 우리 시어머니가 한창 공사 중인 자신의 뒷마당을 말도 없이 들어와 재료들을 들추어 보고, 인부들에게 ‘How much?’하며 짧은 영어로 얼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레 남의 집에 들어와 들쑤셔 대는 무례한 그녀 행동에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까지 했었다고 얘기하는 프리티에게 나는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며 그녀의 이해를 구했다. 지난했던 시어머니의 삶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짧게나마 그녀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추측컨대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조차도 졸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가정환경이 그녀를 공부할 수 있는 학생으로 내 버려두지 않았다. 10살 무렵, 바람난 아버지가 딴 집 살림을 차리고, 혼자 세 딸을 키워야 했던 시어머니의 엄마는 아이가 셋 있는 한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온갖 궂은일을 하며 살던 시어머니의 엄마는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나이에 말이다. 시어머니는 죽은 엄마의 콧구멍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장면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했다. 아마 본인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매년 그녀가 강박적으로 구충제를 먹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어머님은 본인의 학력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 낮은 학력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저 어머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학교를 다니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만들 수 있는 사회인지 발달의 단계 어딘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걸 느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녀는 오히려 사람이 배워 봤자 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고학력자에게 반감이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대학까지 나온 그녀의 할머니는 고등학교 선생님까지 했으면서도 본인의 손녀들을 거두지 않은 무심한 사람이었단다.
학교는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성을 쌓는데 중요한 연습의 장인 것을 그녀는 모른다. 학교는 교과서에서 얻는 배움 외에도 사회 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행동이나, 집단내 공통의 가치관을 배우는 공간인데, 그녀에겐 그런 경험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어딜 가든 사람들과 싸우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어머니의 일화들을 들으면 영화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가 많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찾아간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그 집 마당에 있는 개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단다. 믿을 수 없는 그 일화 속 시어머니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을까? 헤아리기 어려운 거칠고 고된 인생이 어린 시절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이해했다고 해서, 그녀가 가엽다고 해서 오늘날 그녀의 행동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정서 발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불행이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나를 불행하고 힘들게 하면 이해와 동정만으로 그녀를 감싸 안을 수 없게 된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내곤 했다. 내 이야기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녀만 있을 뿐. 본인의 과거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목청은 또 얼마나 크신지, “어머님, 조금 작게 이야기해 주세요.”하면 “너도 남자애 셋 키워봐라 목소리가 안 커지나.”하며 목청을 더 키운다. 난 그녀와 마주 할 때마다 항상 그녀가 살아온 인생사를 듣는다. 내용 없고, 교훈도 없는 아무 이야기를. 늘 그녀가 피해자였고 늘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를 알아달라는 이야기.
처음엔 귀를 기울여 들었지만 얼마나 들었는지 듣기 싫은 이야기. 그 듣기 싫은 목소리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맞은편에 앉아 듣고 있으면 어머님은 자신이 며느리와 대화하는 선진화된 시어머니라는 느낌을 받고 뿌듯해하신다. 일방적인 그녀의 주입은 내 대답 하나 없어도, 어떤 때는 표정관리가 안되어 얼굴이 일그러져 있을 때도 계속되었다.
프리티네 집에서 차를 마시고 돌아온 저녁, 남편은 새벽출근을 위해 자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목욕을 하시겠다며 차가운 욕조에 물을 받고 계셨다.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가는 시어머니는 내가 첨 봤던 몸과는 많이 달라있었다. 70kg이 넘던 거구의 어머님은 첫 만남과는 달리 한국에서 집을 사서 고친다며 고생한 탓에 지난 2년 새 50kg가 되어버렸다. 앙상한 몸통에는 커다란 젖가슴이 축 처진 채 볼 품 없이 달려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등에 때를 밀고, 아프다는 어깨에 마사지를 해드리며 말했다.
“어머님, 아들이랑 싸우지 마세요. 저는 갈등의 중간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저희도 좋고, 어머님도 좋자고 집을 치웠는데 이렇게 계속 물건이 없다고 고함지르시면 저희가 함께 있을 수 없어요. 어머님이 이 집을 형제들의 집으로 꾸미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쓰레기가 가득 차 있으면 아들 중 누가 오겠어요?
그리고 저는 할머니랑도 오래 살았고, 엄마가 아직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걸 보고 있기 때문에 시집살이를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님은 좋으신 분이지만 아들한테 모진소리를 계속하시면 저도 못 참아요. 지금은 어머님 아들이 가장이잖아요. 매일 싸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회사에 가서 힘내서 일을 하겠어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어머님. 둘째는 뉴욕에 가서 연락을 끊었고, 막내는 중국여자친구랑 사귀잖아요. 나중에 어머님 늙고 아프시면 저랑 남편이 모시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죠. 가족이라도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시어머니가 자신의 하소연을 끝내고 목욕에 집중하는 틈을 타, 나도 내 의견을 말해 본다. 분명 제대로 듣지 않으셨을 테고, 듣더라도 금방 잊어버릴 그 말이 욕실 공기 중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꾸리고 싶은 가정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그 모습을 조금은 다듬고 싶었다.
집을 나온 지금, 시어머니는 가끔씩 전화를 하신다. 모든 관계를 정리하듯 집을 나왔지만 모정인지 자신의 편의를 위함인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전화가 온다. 집에서 먹을 것을 들고 가라고 하시며 당근을 내민다거나 자신이 아프다거나 나와 남편이 버린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들이 얼마나 쓸모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죄책감을 유도한 후,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사 오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어머님은 영어도 못하시고, 운전도 못하신다. 미국에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의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그냥 부탁하면 될 일인데, 시어머니는 자식에게 그리 Give & Take를 하려고 하는지 얄팍한 계산으로 내 마음을 조종하려는 것이 눈에 보여 속이 부글거린다. K 장녀로, 착한 딸 콤플렉스까지 있는 나는 또 시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겠지만 따로 사는 것을 결심한 이상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다. 고단한 삶이 빚은 현재의 어머님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큰 그릇이 필요한 걸까? 내마음은 아직 좁고 너무 얕다.
집을 나온 지 2주째.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