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연한 초대

낯선 남자를 끌어안으며

by 한양희
맛있었던 페퍼 바닐라 젤라토

페퍼가 들어간 초콜릿 젤라토를 먹으며 규남과 전화를 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에도 늘 즐거운 느낌이다.

이렇게도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냥 이야기만 해도 즐겁다.

진짜 사랑하는 것일까? 갑자기 가까워진 그와 거리 두기가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메콩 퀼트에서는 지역 여성의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의 수익금은 모두 여성들에게 주어진다고 해서 쓸모없는 예쁜 것들을 꽤나 사버렸다. 쏭, 다돌, 동생들에게 줄 쓸모없는 예쁜 것들. 그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메콩퀼트 센터의 무용하고 예쁜 것들


우연찮게 로열가든 옆에 들어온 갤러리에서 다른 갤러리의 오프닝 행사에 초대 아닌 초대를 받게 되었다.

캄보디아계 캐나다인이라는 특이한 국적의 ‘서레이’가 한국인 동료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Mirage라는 전시 센터인데 꽤나 멋진 사진작품들이 걸려 있어 들어오게 되었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나름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이 갤러리의 젊은 주인의 주 수입원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라고 한다.

오래된 미술품만이 찬미받는 씨엠립에서 젊은 예술가가 헤쳐나가야 할 길이 막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여자 친구와 롱디 중이라는 서레이의 사랑도 함께 응원하며 새롭게 열리는 갤러리 오프닝 파티에 가게 될 생각을 하니 즐겁다.


겔러리 입구와 왼쪽에 안경을 쓰고 서있는 서레이


서레이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갤러리 오프닝 행사가 열리는 곳에 당도했다.

처음 만난 남정네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탄 것이 묘한 짜릿함을 주었다. 물론 그도, 나도 임자 있는 몸들이었기에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분명한 디폴트 값이었지만 홀로 하는 여행에서 잘생긴 남자의 오토바이 뒷 자석에 타는 건 설레는 일이다.

소규모 갤러리의 오프닝 행사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는 아닌 내가 참여해도 될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움츠러들었다. 갤러리의 작품들은 모두 한 작가가 그린 작품이었는데, 다양한 계층, 연령, 성별의 사람들이 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는 평이한 모습이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두리번거리다 작가와 딱 눈이 마주쳤다. 나는 용기를 냈다.

“안녕하세요? 작품이 참 인상적이에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포착하셨더라고요. 혹시 작품에 숨겨둔 의미가 있나요?”


“감사합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충이 있음을 표현했어요. 아주 상징적으로 말이죠. 사람들마다 뒤 배경의 채색이 변화하는 경계선이 있는 게 보이시죠? 그리고 그 경계선은 다들 사람들 코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요. 저는 그걸 물이라고 봤어요. 물에서 숨을 쉬려면 다들 까치발을 디디고, 수면 위로 코를 내놓아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잖아요. 우리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상황과 고통에 처해 있어요. 그 고통의 물속에 있더라도 늘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발 뒤꿈치를 세우고 고통의 수면 위로 코를 내밀어 숨을 쉬죠.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좋은 설명이 되었나요?”

그야말로 완벽한 설명이었다.


그의 작품 중 하나


추상적이지만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그의 그림과 진지하게 설명하는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았던 것 같다.


모든 작품을 살펴보고서는 모르는 군중들 속 조금은 외로움을 느꼈다. 서레이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려했으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툭툭을 세웠다. 7달러를 부르는 툭툭. 저녁 10시 30분이었다. 흥정을 하기엔 밤이 너무 늦었다. 나는 오케이를 외치고 툭툭을 탔다.

(201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