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업부가 해체예정으로 프랑스에 있는 우리 지사가 앞으로 어떻게 운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
미국에 있는 본사 직원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팩트임은 분명하고실로 중대한 사안이었다. 본사가 사업 축소를 추진하면 프랑스 노동법이 노동자 편에서는 탄탄하다 한들 자금 및 모든 비용은 본사에서 받기 때문에 버티는 기간이 언제 까지냐 일뿐, 언젠가는 문을 닫는다가 결국은 결론이기 때문이다.
'날파리, 하루살이 생명이 나와 같군.'
아직 어떤 식으로 판가름이 날지에 대한 것은 명확하게 결론 난 것은 아니지만 실로 윗분들의 중대 결정에 목이 댕강 날아가느냐 아니냐 내가실로 가벼운 목숨이라는 생각이 드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당장에 지금 젖먹이도 있고 아이들 둘을 제 앞가림할 때까지 키워야 되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주택도 마침 알아보려던 참인데.
맹꽁한 자존심은 이미 꾸낏꾸깃하게 버려둔 지 오래요, 내 꿈은 다음 생에나 이루는 게 가능할까. 지금은 내 안위보다 아이들이 크는 게 우선인데 어떻게먹고살아야 하나.
직원 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는 고요한 우물에 커다란 돌을 던지면 커지는 파장처럼 내 마음속에 한동안 일렁이는 파도를 만들어 울림을 만들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난 20대 독일에서 첫 취직을 했을 때도 늘 그런 부분에서 회의적이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디를 취직한다 하여도 60이 넘어 말년병장 달 때까지 눈치 보며 다녀야 되는 게 회사 생활이다. 회사 직무가 사장이라 한들 회장 아들이 아닌 이상 말단 직원이랑 다를게 무엇이냐. 다만 좀 더 번듯하고 대우를 더 해줄 뿐이지 성과 없는 결과 앞에서는 바람 앞에 촛불 신세이긴 마찬가지이다.
엄마 말 맞다나 기술이라도 좀 배워둘 걸 그랬나 마흔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머리 자르는 기술이라도 하나 어디서 배워둘걸. 파리에서 머리 하나 기똥차게 자른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돈방석 앉는 것은 시간문제일 텐데.
니가 안 벌면 다시 니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긴축해서 살면 되지. 돈은 내가 버니까 걱정마.
둘째를 안고서 눈썹이 여덟 팔자로 걱정하는 내 앞에서 남편이 담담하게 얘기했다. 셋째 하나 더 낳자는 나의 끈질긴 물음에 남편은 현실적으로 애가 셋이면 한국 가면 비행기 값이 얼마이며 여행 비용으로 또박또박 얼마가 들어가는지 종종 내게 읊었다. 그때만 해도 '저리 남자가 포부가 없나. 돈 어디서든 벌면 되지.' 했는데 정작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셋째는 정말 나의 욕심인 것만 같았다. 그래, 둘이라도 번듯하게 키우려면 지금부터 정신 잘 차려야 되는데 갑자기막막하다. 그래도남편이 내 곁에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돈이라는 것은
없으면 다만 불편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워야 되는 아이들이 생기니
내게는 돈만 준다면이야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무소유여도 마음이 넉넉하면 된다고 믿던 젊은 날에 나도 나고, 지금 돈이면 불을 켜고 어디서든 삽질이라도 할거 같은 마흔을 앞둔 나도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