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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May 13. 2021

인연의 끝, 그리고 이젠 안녕

참 쉽다 그리고 그냥 허무하다

"Au revoir(잘가)"

불어에서 흔히 헤어질 때 하는 인사로 단어 의미 그대로 보자면 Revoir (Re+voir) "보다"의 동사 "voir"에 다시를 뜻하는 Re- 접두사가 붙어 곧, 또 만나자 라는 뜻이 있다. 헤어짐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사실 또 만날 때를 희망한다는 인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들로 잘 가, 곧 보자, 또 만나... 등 여러 인사들이 많지만 "안녕"이란 말만큼 뭔가 가볍지만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 진한 여운이 남는 인사가 또 없다.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늘 하는 인사, "안녕"


스쳐 지나가듯 읊조리듯 너에게 안녕!

얼마나 다시 볼 지 모르는 시간이 흘러 너는 너의 공간에서 또 나는 나의 공간에서 서로 평안하게 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너에게 안녕!


그리고 이젠 안녕!


 



참 쉽다.

카톡 문자 하나 '찍' 보내고 이렇게 우리 사이를 정리하는 것이.

그간 있었던 시간들은 무엇이었냐며 문자 하나에 모든 게 마무리되는 것이.

서슬 퍼런 말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읽고 읽고, 머릿속에 되뇌어 보아도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우습게도 참 쉽다.


너랑 나랑 지내온 시간이 6년이 넘었는데,
네가 나를 아직 이해 못한다면 우린 여기 까진가 보다.
더 이상 연락하는 일 없을 거야.
잘 살아!



얼마 전 아는 언니와 인연을 끝냈다.

외국에서 만나는 인연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참으로 특별하기에, 언니의 그 2014년의 기억 속에 내가 있고 우연히 우린 프랑스란 외국에서 만났고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만남이 참으로 각별했다.

어쩌면 우리가 한국에서 만났더라면, 너무 다른 성격 때문에 그저 스쳐가는 인연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르겠으나 프랑스에서 만났다는 특별함이 있어서 그 인연이 참으로 오래갔다. 힘든 타향살이에서 함께 라면을 호호 불어 먹으며 프랑스를 욕하고 그들만의 우월주의를 함께 비웃어 주고 그랬는데 그 여러 추억들에게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잘 끝냈다 하는 후련함보다 이렇게 또 인연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외국 생활 동안에 나 스스로 이렇게 인연을 정리한 것은 도합 2번이다.

첫 번째로 친구를 정리하게 됐을 때에도 (물론 그 친구가 연락을 일반적으로 끊었지만) 몇 개월 애닮음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내 결혼식에 사진을 도맡아 찍어줄 정도로 우린 친했고 고향도 같은 부산이었으며 무엇보다 열심히 사는 그 친구에게 인생 운이 잘 따라주지 않는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내가 참 힘들었다.

한창 파리 스냅사진이 유행하던 시절 그 친구는 사진사로 우연히 파리에 오게 되었고 주말 없이 계속되는 업무에 한 달 만에 5킬로가 쪽 빠질 만큼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백수였던 내가 한 달이 멀다 하고 점심을 만들어 트로카데로에 배달을 갔다.

그냥 그게 좋았다.

폭포분수가 아름답게 드리워진 트로카데로에서 우리가 고향 말을 건네며 김치볶음밥을 함께 먹는다는 그 사실이.


그런데 나는 남편을 만나 아기를 갖고 생활에 안정이 되어가고 있던 즈음이었고 그 친구는 사진 학교를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혼자 힘들게 밥벌이해야 하는 생활이 서로 달랐다. 동갑내기였지만 다른 삶이었고 그 친구는 그런 내가 부러웠던지 별 몇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인연이 정리가 됐다. 친구에게 전화도 걸어보고 문자도 남겨보고 무슨 일인지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싸늘한 말뿐 우린 그렇게 좁은 파리 하늘 아래 모르는 사이가 됐다.

간간이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듣곤 해도 이젠 무덤덤한 마음이 됐다.

마음이 그렇게 굳은살이 베기까지는 오랜 생채기가 있었다.


그렇게 처음 해봤던 애달프던 인연 정리가 이번에는 많이 해보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쉽게 끝내지 다니.

참 쉽다.

난 그래서 가끔 너무 초고속 디지털 시대가 싫다.

문자로 이렇게 그냥 정리가 되고 친구 사이 차단하면 너랑 나랑 갑자기 모르던 사람이 되니.

추억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 간간이 떠오르는 마치 마른안주처럼 곱씹다가 다시 넣어두면 되는 것이 되고 그렇게 마무리되는 게 아쉽지만, 뭐 그렇다.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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