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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May 30. 2021

방황해도 괜찮아

어차피인생은 연습이다.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

복귀하기 전에 회사 내 큰 프로젝트가 어그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 프로젝트가 없이 이 조직이 존속할 수 없다는 게 누구나가 예상했던 바였다. 6개월 남짓 그래도 어떻게 잘 버텨오나 싶더니만 결국은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생각했다.

복귀 후 자산 정리며 이사 준비로 그게 거의 모든 일이 었던 내게 이사를 기점으로 더 이상 이 조직 내에서 할 일이 없게 됐다.



회사 통보가 나고 며칠 후 상사와의 면담.

정적을 깨고 얘기를 처음 꺼낸 그분은 내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담담하다 했다. 모두 예상한 바이지 않냐.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그분을 뵙고 면접을 본 그 회의실에서 이렇게 앞으로의 경로를 논의한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만 현실이 그런 거 같다 얘기했다. 면접 때 그분의 비전을 들었고 회사의 미래를 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무엇보다 가장으로서도 어디든 불러주면 일하는 게, 그게 보람이었다면 그랬다.


 OO 씨는 무엇이 하고 싶어? 앞으로?

근데 무엇이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갑자기 파워 스위치가 나간 거처럼 귀에서 '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게, 

무엇을 내가 하고 싶을까? 

내 나이 서른 후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또는 궁리 중이다 이런 류의 어정쩡한 대답을 듣고 그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창피해하며 이래저래 둘러둘러 대답을 했다. "두 아이를 잘 키워야 하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떤 포지션이야 주어진 데로 열심히 하겠다." 뭐 이런? 변죽 울리는 얘기만 했던 거 같다.   




내가 19살을 맞던 해 겨울 아빠의 사업이 기울고 이삿짐을 싸고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던 그때 -  첫 날밤 낯선 방, 3평 남짓한 작은 방에 가득 들어앉은 짐을 보며 엄마 손을 잡고 바닥에 누웠다. 흙탕물을 휘휘 젖다가 시간이 지나면 흙이 바닥에 촤악 가라앉은 것처럼 마음은 무겁고도 고요했다.  

나의 20대는 방황을 할 틈이 없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얼른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나 하나라도 집에 부담을 덜어드리자는 것이 다였다. 어린 나이에 돈으로 인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험을 했고 세상 매운맛을 단단히 본 때가 그때였다. 흔한 대학 동아리 생활도 못하고 농활도 가본 적이 없이 대학의 낭만이나 연애야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학교 생활 마치면 과외를 하러 다니고 공부방 선생님으로 돈벌이를 병행해야 했다. 작지만 학생 어머님들이 다달이 건네주시는 하얀 봉투가 나는 그저 뿌듯했다.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평생 열심히 살아온 그분들을 원망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세상이 내게 어릴 때 담금질을 미리 시켜주는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에 독일에 왔고 프랑스에서 남편을 만나 프랑스로 와서 가족을 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다. 성인이 되어 제 밥벌이하고 부모님께 손 안 벌리는 그 일로도 나는 반 성공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분이 내게 "니 꿈이 뭐냐" 란다. 

오랫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그 문답에서 난 결론을 찾지 못하고 그저 돈벌이에 바빴다. 외국 생활 14년, 오롯이 내가 벌어서 집세 내고 생활비 쓰고 차비 내고 - 그러다 보니 무엇을 내가 좋아하는지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더 중요했었나 보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보다. 

오랜 방황에서의 결론은 다시 내일로 미뤄두고 그저 돈이 내게는 그저 중했지. 

아니면 그냥 방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결론을 내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 같았다. 

근데 그러고 보니 풀지 못한 숙제가 늘 마음에 남아 있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내게 너무 쉬운 물음 인양 물어볼 때 적잖이 당황이 된다. 그리고 사실 잘 모르겠다. 

거창한 것도 아닌데 한마디로 딱 이거요! 이리 할 수가 없다. 




내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게 팔방미인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두루두루 잘한다 해서 그런 말을 해주셨다. 운동도 음악도 공부도 다 고만고만하니 잘하니 그런 말씀을 종종 해주셨다. 단어에 "미인"이 들어가니까 어린 나이에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그저 그 단어가 좋은 건가 보다 했다. 

그러나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게 그리 썩 좋은 얘기만은 아닌 거 같다. 

어디 한 분야의 최고가 되지 못하고 이곳저곳 변두리만 울리다 마는 소위 어중이떠중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어렸을 때 친구들 중에서도 만화를 기갈나게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꼭 만화가가 될 거라며 내게 스케치북 빽빽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던 친구가 생각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나에 꽂혀서 (또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그 외길만 가는 그런 인생이 때론 부럽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으로 나처럼 이렇게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그의 삶을 계속 열심히 살아갈 테니까. 


이런 애매한 포지션으로 무엇이 내 꿈인지도 모른 채 방황하는 삼십대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더 속 터지는 일은 그렇다고 딱히 답을 낼 그 어떤 것도 지금은 없다. 

귀요미들을 키워내려면 돈은 벌어야 한다 - 단, 그 결론밖에 없다. 

적성이고 꿈이고 나발이고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그저 생업에 충실하는 것.  아이들이 적당히 자기 앞가림하고서 나중 후에 "엄마가 이제 내 꿈 좀 찾아가야 할거 같어" 이런 얘기를 하려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그냥 15년은 묵묵히 일하자. 

뭐 어때, "애들 키우고 먹고사는 일에 바빴다." 누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지 뭐. 


방황해도 괜찮다. 

어차피 인생은 연습이다. 

무한한 갈래로 나뉘어있는 길을 가다가 돌아가고 - 뒤돌아 다시 간다고 해서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다 해서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다리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걷고 있다는 것뿐, 

그거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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