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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Aug 26. 2020

프랑스 남편, 너와 나의 육아 동상이몽

화성에서 온 너란 남자

얼마 전 잠잠이가 50일 반통잠을 나에게 안겨준 그때에 남편과 한번 된통 싸운 이 있었다. 사소한 말꼬투리로 시작된 싸움은 나의 2시간 가출을 끝으로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8월은 첫째를 봐주시는 유모가 한단 내내 바캉스 기간이라 쉬는 관계로 남편이 7월 말 8월 초 이렇게 2주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밤낮으로 내가 둘째를 담당했으니 육아 휴직기간 동안은 남편이 그래도 좀 같이 도와주겠거니 하는 기대감에

"내일부터는 새벽에 니가 기저귀라도 좀 갈래?" 그랬더니

"니가 그럼 첫째를 맡고 데리고 다니면서 치과며 다른 진료도 가든지.." 란다. 프랑스에 산지 5년이 남짓 넘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지 못한 언어 때문에 의사 진료와 같은 중대 사항들은 어느 정도 내게 작은 도전과 같았다. 그런데 그런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림과 동시에 공동육아에 있어 '너는 너 나는 나' 같은 개인주의적 입장이라니.. 육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니 담당 내 담당 이러니 자존심이 한순간 팍 상해버린 거다. 그러다가 육아 휴직인데 니가 좀 더 봐주는 게 덧나냐, 넌 항상 내게 너 많이 요구한다.. 저녁 식사를 앞두고 언성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은 채 집을 나왔다.  이 상태로 음식을 함께 먹다가는 아이 앞에서 밥상을 다 엎어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길로 가출이라도 하고 싶지만 둘째는 아직 젖먹이라 내가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사이였다면 쿨하게 잘 지내라 하고 헤어질 각이었지만 나에게는 지금 똘망똘망 두 아들이 있다.  50일을 젖먹이를 홀로 밤낮으로 고생하며 키웠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게 되다니... 이 억울한 심정을 어디 호소할 때도 없다. 


육아에 있어 남편과 나는 늘 동상이몽이었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 전에는 싸운 적도 없고 나의 지랄 맞은 변덕에도 남편은 늘 잘 이해해주었다. 시골총각이었던 남편의 순수함에 반해 나는 독일을 떠나 이 남자 하나만 바라보고 프랑스로 왔다. 약대 공부를 하고 있던 내가 뜬금없이 다 접고 프랑스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가 현실적 조언을 했다. 1년 남짓 사귀고 나라를 옮기는 결정을 했을 때 다들 너무 섣부르다 하였다. 그리고 차차 직장을 찾고 집을 사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고 프랑스에 정착한 지 3년 만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4시간 밀착 케어해야 하는 대상이 생기자 그의 순수함은 점점 아둔함이 되었고 우린 점점 말싸움하는 횟수가 늘었다. 첫째가 커가는 1년 동안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서 울어대는 아기를 달랜다던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 없었다. 누구 남편은 부인이 새벽 수유를 할 동안 기저귀를 들고 앉은 채로 꾸벅꾸벅이라도 존다는데, 우리 남편은 기척 없이 쿨쿨 잠만 주무신다. 남편은 어린 아기를 혼자 어쩔 줄을 몰라해서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내가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해야 했다. 나도 모든 게 처음이어서 힘들었지만 같이 함께 해줄 남편마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나의 부담감은 갑절로 심해지고 우울증은 계속되었다.

그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공동 육아에 있어서 큰 방해만 됐다. 함께 육아전쟁을 치를 전우병이 필요하건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그의 모습은 나를 한숨짓게 했다. 그러고도 식구들에게 아기를 보여준답시고 시댁 투어를 감행하시는 남편은 나의 건강상태나 감정 따위 안중에도 없나 보다.


임신, 출산은 여자에게 있어서 무한한 희생과 같다. 흔히들 임산부의 D라인은 숭고한 아름다움이라 하지만 튼살이며 걸을 때마다 오는 치골통과 위를 짓누르며 계속되는 속 답답함은 해본 사람이 아니고선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힘겹게 출산을 끝내고 모든 게 끝이 아니라 육아라는 또 다른 시작이 있다.

철없던 내게 육아는 더 많은 인내심과 이해심을 요구했다. 그것은 비단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남편을 향한 마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우리는 동서양이라는 문화 차이와 서로의 성격차이와 등등 여러 부분을 육아라는 공동과제를 통해서 알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는 잘 안다. '한국 여자는 연애할 때는 수줍고 한없이 여린 소녀 같지만 결혼 함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마녀가 된다는 것'을.


앞으로도 우린 싸울 일이 많을 거 같다. 다만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자는 공통된 약속으로 모두가 잠든 밤에 침대에서 조근조근 대화가 이어질 뿐이지만. 나는 다소 양은냄비 같은 성격이라 다다다다 쏘아붙이기를 5분이면 스스로 정리될 때가 많고 몇 시간이 지나 다시 얘기를 이어갈 즈음이면 식을 대로 식은 주제가 이미 머릿속에서 삭제가 된 경우가 많다. 남편은 보통 잘 곱씹는 성격이 못되어서 보통은 내가 시비를 걸어야 시동이 걸리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선 아주 차근차근한 말로 나의 약한 부분을 한방에 보내버리는 재주가 있다.


결혼 5년 차, 이제 그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여전히 금성에 사는 나에게 그는 화성에서 온 남자 같지만 말이다. 육아에 있어 너랑 나랑의 동상이몽은 당분간은 계속 평행선이 될 거 같다. 어쩌겠는가. 이게 부부의 세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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