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관계 수명

by 이은주

[칼럼] 2024. 04.02 서울신문 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옷의 수명

봄기운이 완연해지니 TV홈쇼핑 채널마다 화사하고 가벼운 봄옷 판매 방송이 넘친다.

홀린 듯 시청하다가 활용도 좋은 반팔 티셔츠를 충동구매했다. 5종 묶음 가격이 5만원대.

티셔츠 한 장에 1만원꼴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썩 괜찮은 가성비란 생각에 얼른 주문했다.


‘득템’했다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색깔만 다를 뿐 모양이 똑같은 티셔츠를 5장이나 배송받고 보니 ‘이걸 언제 다 입나’ 난감했다.

순간적인 욕심에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잔뜩 산 경솔함에 화도 났다.


얼마 전 방송 뉴스에서 아프리카 해안을 뒤덮은 의류쓰레기 더미를 봤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버려진 옷들이라고 한다.

산처럼 쌓인 옷가지 중에서 수명이 다해 폐기된 의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상당수는 나처럼 싼 맛에 사서 한 철만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 소비의 희생물이 아닐까.

아파트 단지 수거함에 무심히 던져 넣었던 새 옷 같은 헌 옷들의 예상치 못한 종착지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옷’이라 하면 고집스러운 나의 취향이 있다.

유행 타지 않는 것,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는 색상, 어떤 신발에도 어울리는 옷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구매한다.

왜? 기본 10년은 입기 때문이다.

옷을 오랜 기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

이쯤에서 ‘대인관계 수명’에 대해 생각하며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사람을 깊이 오랜 기간 유지하는 편이다. 짧으면 10년. 이 관계를 유지하지 위해서는 ‘진실함’과‘거리’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에도 진솔함이 느껴져야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관심 있는 듯 무심한 듯. 자기 자랑과 하소연을 늘어놓지 않고 서로 배려해야만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 잠깐 만나는 관계가 아닌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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