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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Sep 30. 2024

수레바퀴 아래서 감상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로 표현되는 권위와 질서. 그리고 강요 

어째서 권위는 사라지지 않는가. 10년전에도 , 30년전에도, 100년전에도 , 200년전에도. 

사람이 있고 사회가 있는 한 권위는 계속 존재한다

문제는 이 권위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권위란 질서인데 이 기존 질서라는 것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그 질서를 거부하려는 젊은이 또한 언제나 존재한다.  또 그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려하면서도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버리는 때에 다시금 그들만의 질서를 새로운 젊은이들에게 부과하려한다.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었고 이 수레바퀴 안에서 사람들은 늘 고통받아왔다. 


예수가 유대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 부르주아가 왕정을 거부하며 헤세가 기독교의 권위를 거부하듯. 

586세대가 군사정권의 권위를 거부하고 또 MZ세대가 지금의 기성세대의 권위를 거부하듯.

그러니까 기존 세대의 권위는 항상 다음 세대가 거부해야하는 대상이 되는 셈이다. 

기존질서를 거부한 세대가 다시금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고 또 다음 세대는 거부하고, 반복된다.


권위의 고통에도 잘 순응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다수라 이런 역사가 계속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한스 기벤라트처럼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하길 마련이다. 

특히나 한스처럼 어머니의 부재 , 친구의 부재, 마음터놓을 곳의 부재가 있는 이라면 그의 자살은 필연적인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회의 질서는 그 구성원들이 만든다. 우리는 가끔씩 지금 사회의 문제를 윗세대나 아랫세대 혹은 정치가나 기업가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진짜 원인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서로에게 눈치를 주고 질서를 강요하니 그런 사회의 분위기가 정책을 만들고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함으로써 그 나름의 수레바퀴를 만든다. 

그 수레바퀴안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워하며 혹 누군가는 깔려 죽는다.


헤세는 이런 현상에대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래도 나는 안다.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삶을. 그게 어떤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도 몰라도 그런 삶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아마도 헤세는 '데미안' 이나 '싯다르타'에서 그 답을 내놓은 것 같다. 자신의 길을 걸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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